이름에 대하여
지유야, 온유야.
이렇게 너희의 이름을 부르기만해도 아빠는 너무 행복하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희가 잘 때 엄마와 함께 너희의 이름을 수 백번, 수 천번은 부른 것 같다. 지유야, 온유야. 엄마 아빠가 사랑해라고 몇 번이나 속삭였고, 몇 번이나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었고, 내일은 또 함께 행복한 하루를 만들자고 다짐하며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눈썹을 쓸어줬었지. 이렇게 글을 통해 너희의 이름을 부르면 그 감정이 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구나. 손가락으로 부르든 입으로 부르든 하다 못해 마음 속으로 너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내게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너희에게 남기는 첫 번째 편지에는 너희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볼까 한다.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이름 모두 엄마와 아빠가 오랜 시간 합심하여 지은 이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저 합심이라는 단어에는 꽤나 많은 과정이 축약되어 있단다. 많은 날을 고민했고, 수없이 마찰을 빚어가며 선택한 이름이란다. 많은 기준을 세웠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몇 가지 추리면 이렇다. 먼저 너희가 살아가며 내세우고 또 다른 사람에게 불릴 때 부끄럽지 않은 이름이어야 했다. 둘째로 남들이 많이 하는, 유행을 타는 이름은 피하면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이름을 하기로 했다. 셋째로,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릴 때 너무 튀는 이름은 하지 않기로 했다. 조건들이 서로 상충하는 것 같아도 엄마와 아빠는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켰다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다. 그러니 적어도 너희가 살아가며 이름을 대충 지은 것 같다며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먼저, 지유야. 네 이름은 지혜를 뜻하는 ‘지’, 즐거움을 뜻하는 ‘유’,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란다. 엄마가 고심해서 만든 예쁜 이름에 아빠가 뜻을 담아서 만든 이름이지. 지혜롭고 즐겁게 너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단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위트. 그래, 위트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위트는 여러모로 유머나 개그와는 다르다. 위트가 주는 웃음은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요소가 들어있지 않지. 또한 위트가 주는 웃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한다. 때로는 한 번 이상 곱씹어보면서, 이게 이런 의미구나, 감탄하게 하는 웃음, 오래도록 곱씹으며 미소지을 수 있는 잔잔한 웃음이지.
아빠는 네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네 스스로도 자주 웃을 수 있는 즐거운 삶, 또 그러면서 다른 이를 비웃거나 비꼬지 않고, 또 싸우지 않는 지혜로운 삶. 아빠는 마지막까지 그걸 하려고 노력했다만 잘 안 되더구나.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모든 걸 물려받은 너라면 충분히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삶이 너에게도 축복이길, 또 네가 그 축복을 너의 아이에게도 물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지금도 말이다.
그리고 온유야. 네 이름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을 뜻하는 온유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지만, 평온하고 즐거우라는 뜻의 중의적인 의미로 지은 이름이기도 하단다. 삶이란 것은 항상 우리를 시험하곤 한다. 넘어야 할 수많은 산과 참고 걸어야 할 험한 길을 선물하는 것이 삶이기도 하다만, 그 가운데에서 항상 평온함을 잃지 않고, 또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지. 그런 삶을 위해서는, 온유야, 흔들리지 않는 묵직한 무게 중심이 필요하단다. 다른 사람의 말, 혹은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무게 중심 말이다.
그런 무게 중심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을 거다. 너는 너만의 방식을 찾으렴. 아빠도 부족했던 것이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이었거든. 다만 내가 찾은 방식은 바로 여유를 가지는 것이란다. 내 주위의 모두가 어떤 방향으로 달려가도 일단 차분히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때도 있고, 모두가 주저하더라도 확신을 갖고 먼저 나아가야 할 때도 있지. 그리고 주위에서 너에게 무슨 말을 퍼붓든지 너는 너만의 기준과 계획을 가지고 차분히 나아갈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빠는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여유를 통해 평온을 찾으려 했다. 평온하고 즐거운 삶, 그것은 나태하게 놀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여유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네 길을 묵묵히 갈 수 있는 삶이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그래, 이만큼 읽으면 알겠지만 사실 삶을 살아갈 때 아빠와 엄마는 둘이 서로 의지하기를 바랐다.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무게 중심을 가지고, 어떤 힘든 일이 닥쳐와도 웃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위트가 있다면 삶에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야. 두려울 것이 있더라도, 많더라도 이겨낼 수 있겠지. 이렇게 너희의 이름에는 이렇게 아빠와 엄마의 작은 바람이 들어있단다.
하지만 너희가 어떤 삶을 살든, 또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든 그것은 우리가 정해서는 안 될 일이다. 너희의 삶은 너희가 선택하고 살아가야하는 것이니까. 이름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는 아빠와 엄마의 작은 욕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구나. 더 넓게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이 사실 그렇다. 스스로 이름을 정하는 사람보다는, 주어진 이름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지 않겠니. 그래서 때로는 그 자체로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이름도 결국 그 삶을 살아낸 사람에 의해 평가되기 마련이다. 결국 몇 글자 이내의 문자로 만들어진 것이 이름이니 역사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이름들이 있고, 그 앞 세대를 살아낸 어떤 사람으로 인해 현 세대의 사람이 놀림감이 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볼 수 있잖니. 중요한 것은 이름보다도, 혹은 그 이름이 가지는 상징이나 그 이름이 세워둔 울타리 안의 가치들 보다도, 그 이름표를 가슴팍에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의 삶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너희에게 주어진 이름은 엄마와 아빠의 바람이고, 기도제목일 뿐이다. 이름은 너희의 가능성을 옭아매거나 너희의 잠재력을 가둬두는 울타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름을 멋지게, 또는 악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너희가 살아내는 삶이 될 것이다. 지유라는 이름, 온유라는 이름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을 이름이 될지, 혹은 놀림을 받을 이름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차마 입에 언급하기조차 무서워하는 이름이 될지는 바로 너희에게 달린 것이야.
다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너희가 어떤 삶을 살아내는 아빠는 너희를 사랑할 거다. 자고 있는 너희의 머리맡에서 글을 쓰는 지금도, 또 너희가 이 글을 읽게 되는 몇 년 후 그 순간에도, 그리고 결국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그 멋진 날에도 아빠는 여전히 너희를 사랑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 그건 너희가 이름대로 살아서, 이름을 빛내서, 또는 그러지 못해서, 어느 쪽이든 전혀 그런 이유는 아닐 거다. 아빠가 너희를 사랑하는 건 너희가 어떤 특정한 삶을 살아서가 아니라 너희가 지유와 온유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엄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순간 이 세상에 나타난 존재라서, 그래서 그렇다.
그러니, 얘들아. 앞으로 살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은 좋지만, 과연 이런 삶도 아빠가 자랑스러워할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말거라. 너희는 그저 너희가 살아가며 체득하는 지식과 지혜들로 이 길이 바른 것인가 고민하며 살기에도 바쁠 거야.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며 살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정말로 특별한 지유와 온유라는 사람을 세상에 태어나게 할 것임을 아빠는 굳게 믿고 있다. 이 아빠는 너희가 어떤 길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든 너희를 사랑할 거다. 그것만 알아두거라.
사랑한다, 지유야, 온유야.
잠자고 있는 너희의 눈썹을 만지는 이 순간마저 너무나 소중한,
이 세상에서 너희를 가장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