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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승맞은 아빠의 마지막 잔소리

by 봄단풍

지유야, 온유야.


너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다. 그리고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이 다음에 이어질 말들은 혹여나 잊게 되더라도 이것만큼은 잊지 말아다오. 이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사랑했고, 또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너희들이라는 것 말이다. 아빠는 너희와 평생 함께 살면서 매일매일 수도 없이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이 못된 세상이 그토록 내버려두지를 않는구나. 지금도 매일 같이 의사 선생님들이 무서운 말씀을 하고 계시니, 아마 너희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 너희는 이 아빠를 직접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 거란다. 아빠에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짧고, 그마저도 언제 끝날지 모르지. 그렇다면 너희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할까? 아빠는 글을 선택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에게 주어진 재능은 별 볼일 없었다만 다행히 읽기 쉬운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재산이야 알아서 정리 될테고, 사랑한다는 말은 너희 엄마가 아빠 몫까지 해줄 수 있을테니, 아빠가 남겨야할 것은 사실 글 뿐이기도 하다. 사진, 동영상? 당연히 남겨야지. 요즘에는 AI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으니 자료만 잘 남기면 아마 너희는 아빠가 이 글을 직접 읽어주는 영상도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전기가 없으면 못 볼 수도 있게 되잖니.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여러모로 대비를 해야겠지. 이 글 말고도 최대한 많은 것을 남기겠다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너희 엄마에게 부탁했다.


지유야, 온유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음에 이어질 글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다만 아빠가 살아가며 느낀 것들, 너희에게 꼭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하지만 절대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아빠의 글은 답지가 아니다. 이정표도 아니다. 아빠의 글은 글일 뿐이고 그것을 무엇으로 택할지는 바로 너희가 살아가면서 결정할 일이다. 왜냐하면 너희가 살아가게 될 세상과 아빠가 살아왔던 세상은 분명히 다를테니 말이다.


물론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아빠 때에도 잊혀져가는 세상의 소중한 가치들이 그 때에도 동일했으면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이라고 부르는 것들, 많은 사람들이 ‘그건 너무 이상적이다’ 라고 반박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그 때에도 소중한 가치이길 바라고 있단다. 지난 몇 천년의 인류사에서 꾸준히 지켜지는 보편적인 가치들 말이야. 때로는 사랑, 믿음 같은 묵직한 단어일 수도 있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처럼 언뜻 듣기에 무서운 문장들이 될 수도 있겠지. 세세한 것들은 이후의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 한창 때는 한 줄 쓰기도 힘들었던 글을 지금은 하루종일도 쓸 수 있겠구나. 그것이 한 문장 한 문장 의미를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너희들과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쓰자니 도무지 손가락이 쉴 줄을 모르는구나.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본디 글이라는 것은 쓰고 싶은 것들을 모두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최대한 간결하고 명료하게 전달해야할진대, 너희들을 생각하자니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글로 표현하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다는 말이 저절로 따라붙는구나.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얼마나 너희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싶은지, 모기가 물어서 빨갛게 부어오른 종아리를 얼마나 쓸어주고 싶고, 그 보드라운 볼에 입술을 몇 번이고 비비고 싶은지 모른다. 잠들어있는 너희들의 옆에 누워서 팔베개를 해주고, 이불을 덮어주고, 불편해서 뒤척거리면 두 팔로 꼭 안아주면서 좋은 꿈을 꾸라고, 울면서 깨지 말고 웃으면서 아침에 보자고 하고 싶어. 아, 정말, 앞으로 그렇게 수백 번 수천 번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 같아서는 평생 너희와 함께 살고 싶지만, 이 험한 세상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구나.


하지만 원망하지 말거라. 그 대상이 아빠가 키워온 병이든, 혹은 그 병을 고칠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한 인류든, 원망은 아빠가 실컷 하고 또 많이 하고 있을테니 너희들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주어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고민하라는 뜻은 살아가며 반드시 의미 있는 것을 이루라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의미없어 보이는 일로 시간을 죽이면서 보내야할 순간도 있고, 때로는 심심풀이 땅콩인 일로 시간을 때울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때로는 온전히 즐기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고, 아무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다만 그런 시간조차 너희가 원하는 그 목적에 맞게 누리려무나.


한 글자 한 글자 쓰는 지금도 너희들이 보고 싶구나. 한 획 한 획에도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겨놓고 싶고, 한 줄 한 줄 사이에도 사랑한다는 말로 가득 채우고 싶어. 그래서 너희들이 평생동안 읽어도 다 읽지 못할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이 지면 가득하게 채우고 싶다. 힘들 때마다 와서 아직 읽지 못한 사랑을 읽고, 또 즐거울 때도 와서 그 때에도 아직 읽지 못한 사랑을 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중에도 얘기하겠지만 무조건 꽉 채운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


그래서 너희를 향한 첫 편지는 이렇게 줄여볼까 한다. 지유야, 온유야. 너희를 부르는 이 이름, 그리고 아빠의 기억에 새겨진 너희의 모든 모습, 시간, 살아 온 역사, 그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너희가 잠든 사이 이렇게 혼자 종이와 컴퓨터를 번갈아 쳐다보며 글을 쓰는 지금도 너희가 보고 싶고, 너희의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를 밤새도록 듣고 싶다. 너희가 이 글을 읽는 순간이 너희의 삶의 어떤 순간이든, 부디 아빠의 이 글이 너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우리 딸, 우리 아들.

너희를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