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하루 한 편 단편소설

by 봄단풍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갑작스레 주어지는 행운이 못내 불안해서 발을 떼지 못하는 경우. 예를 들면, 지금처럼 내가 들어오자마자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머물러있는 순간을 말한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층의 누군가가 먼저 부를까봐 허겁지겁 달려가서 버튼을 눌렀을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굳이 빨리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괜히 의심스러운 마음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빨갛게 불이 들어온 1을 노려봤다. 엘리베이터 문 바로 위에 있는 글자를 보자니, 왠지 저 글자가 옆에 나란히 하나 더 있다면 눈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던 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뭐해, 안 타고.”


나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찌푸렸던 내 이마가 펴진 걸 느낄 새도 없이,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중후한 목소리가 한 번 더 울려퍼졌다.


“날 춥다. 얼른 들어와라.”


마치 누군가에게 떠밀리듯, 혹은 뭔가에 이끌리듯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들어가 10층을 누르자마자, 문은 평소처럼 스르륵 닫히더니 이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좀 늦네.”

“네, 일이 있어서……. 근데 누구세요?”

“누구긴. 네가 타고 있잖아.”


그러니까 말하는 사람은, 본인이 엘리베이터라고 말하는 셈이었다.


“원래 말을……. 말씀을 할 줄 아세요?”

“가끔.”


말이라고 할지, 말씀이라고 할지 애매했지만 아무튼 이 엘리베이터는 생각보다 무뚝뚝했다. 아니, 추운 것도 걱정해주고 내가 언제 오는지도 알 정도면 무뚝뚝한 척 따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건, 그래도 무서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이 친구는 다른 요정들처럼 시간을 멈추지는 않아서 그런지도 몰랐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가끔 아저……. 선생님께서 내려가는 중에 제가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면 무시하고 지나가실 때가 있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에요?”


그 와중에 하필 생각나도 그런 질문이 생각났다. 혹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찰나, 목소리는 천천히 이어졌다.


“야.”

“네.”

“넌 누가 달리다가 옆에서 부르면 바로 멈출 수 있냐.”

“아뇨.”

“그래.”


대화는 짧고 빠르게 이어졌고,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사고 전개에 고개를 끄덕일 새도 없이,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0층에 멈춰서있었다.


“조심히 가라.”

“아저씨……. 아니, 저. 선생님.”


내리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은 닫혔고, 이어진 부름에도 대답은 없었다. 나는 잠시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천천히 집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혹시나 사람의 만남에도 기대를 저버리는 관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되는지 잠시 생각해봤지만 영 속 시원한 공통점은 찾기 어려웠다.


- 우대권 단편소설/수필 『엘리베이터 요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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