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단편소설
"형, 전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뭐가?"
불꽃놀이의 마지막 불꽃이 사그라 들었을 때, 상욱은 땅바닥을 쳐다보며 물어왔다. 오래도록 올려다보던 목이 뻐근했던지, 그의 다부진 오른손은 자기 목을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사랑이……. 진짜 있을까요?"
새로 바꾼 핸드폰 카메라의 셔터를 열심히 누르던 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불꽃놀이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낭만적인 이십대 청년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그건 어찌됐든 감정이잖아요. 그리고 사람은 항상 자기 감정을 이성으로 잘 조절할 수 있고……."
말을 하면서도 상욱은 계속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속 다음 말을 생각하며 차분히 말을 이어나가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이 이야기가 꽤나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누굴 좋아하는 제 모습이 상상이 안 돼요. 누가 누굴 좋아하고, 고백하고, 사귀고, 차이고. 그런 걸 보는데 별로 공감이 안 된다고 해야하나."
"남 얘기니까 그런 거 아냐?"
"그게 걱정이에요."
상욱은 어느새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긴 한데, 막상 생겨도 대단할 것 같지 않아요."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는 의미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말 그런 생각을 이해한다는 건 아니었다. 나는 늘 감성과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오죽하면 남자 둘이서도 꿋꿋이 불꽃놀이를 보러 왔겠어. 어쩌면 그래서 상욱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야, 사랑은 존재하고 대단한 거란다.’라는 답을 할만한 사람이라서, 그런 기대를 주는 사람이라서. 다만…….
“야, 근데 왜 나한테…….”
“네, 형은 최근에 사랑도 이별도 겪어봤으니까 가장 냉정하게 얘기하실 수 있지 않을까해서.”
진지하게 답변하려던 마음이 잠시 사라질 뻔 했지만, 나는 겸손히 껄껄 웃으며 대답을 흘렸다. 사랑과 그로부터 초래한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지. 자업자득이다. 암 그렇고말고.
“사랑보다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면 어떻게 돼요?”
“누구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지?”
상욱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꽃놀이가 지나간 자리엔 연기만 남아 있었고, 사람들이 지나간 자리엔 흘러간 수다와 바람만 남아 있었다. 한참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내 천천히 네, 하고 대답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지구상에는 70억명의 사람이 있고, 70억가지의 성공이 있다고. 마찬가지로,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 혹은 그 이상의 사랑의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사랑만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늘 사랑에 대한 담론은 조심스러웠다, 나에겐.
“솔직히, 첫 눈에 반하는 건 말이 안 되고. 그럼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텐데. 그게 불가능할 것 같아요, 저는. 내가 억제를 하려면 충분히 참을 수 있을 것도 같고.”
“그건 너도 모르게 올 거야.”
이번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 가요, 무심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상욱은, 역시 몇 분전의 나처럼 정말로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너의 이성이 아무리 통제력이 뛰어나도, 그건 네 경험의 울타리 안에서 생기는 거고.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정말 갑작스럽게, 울타리 밖에서 뛰어 들어 오거든.”
나는 다시 카메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수십, 아니 수백 장의 불꽃놀이가 담겨있었지만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카메라를 통해 보고 찍느라 직접 두 눈으로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탓인지, 괜히 중요한 장면을 놓친 것 같은 미련과 후회가 남아있었다.
“혹시 설명해줄 수 있어요?”
“뭘?”
“그, 막. 뭐라고 하지, 그……,”
“어떻게 뛰어 들어오냐고?”
상욱은 손가락을 딱딱 튕기며 날 가리켰다. 때로는 한 두마디 말보다 몸짓이나 표정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마찬가지로, 장황한 설명보다 직접 겪어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때가 있다. 특히나 그 것이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이라면. 오히려 그 설명이 소중한 경험이 가져다 줄 것들을 제한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상욱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 건 그런 이유였다. 턱을 한 두번 쓰담 쓰담, 연기와 구름이 구분 안 가도록 뿌연 하늘을 두어번 흘깃. 그 흐릿한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다가, 나는 그제야 담론의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눈을 상욱이에게로 돌렸다.
“너 달의 공전주기랑 지구의 자전주기가 똑같다는 말 들어봤지?”
그 정도는 흔한 이야기리라 생각했다. 둘이 도는 속도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늘 달의 한쪽 면만 보인다고.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 부분까지 가려면 조금 더 가야했다.
“처음에는 그냥 달같은 거야.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날 좋으면 보이고 흐리면 흐린 대로 안 보여도 그러려니 하고.
그러다가 날씨 좋은 날. 미세먼지도 없고 구름도 너무 맑고 그 날 따라 밤에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어서 멍하니 하늘 한 번 쳐다보게 되는 날. 괜히 한 번 봤는데 달이 너무 밝고 예쁜거지. 핸드폰 꺼내서 사진도 찍고, 인스타에도 올리고. 그리고 그런 날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고.
다음 날 사람들 만나서 얘기를 꺼내는 거야. 어제 달 봤어요? 엄청 밝았는데. 어제 날씨가 좋아서 잘 보이더라, 마침 어제 보름달이더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또 잊어버리고. 그러다가 또 밤이 되면 괜히 어제처럼 밝고 예쁠까, 하늘 올려다보게 되고.”
나는 멍하니 방금 찍은 사진첩을 앞으로 되돌렸다. 수십 장의 불꽃이 터지는 장면, 터지다 마는 장면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인증을 남겨야 한다며 상욱이와 어깨동무한 사진도 담겨 있었다. 다만 손가락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옛날, 더 이전, 더 오래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또 그렇게 잊어버리고 며칠 지나서, 이번에도 날이 좋고 날 좋고 약속 없는 날. 하늘을 한 번 봤더니 달이 참 밝고 예쁜데, 보름달이 아니었던 거지. 신기해서 또 사진으로 담아놓은 거야. 그리고 사람들하고 또 얘기를 하는 거야. 왼쪽으로 기운 걸 상현이라고 했는지, 하현이라고 했는지. 근데 사람들도 그 정도까지는 잘 모르잖아?
그럼 찾아보게 되는 거야. 내가 어제 본 달이 상현인지 하현인지, 초생이 맞는지 초승이 맞는지, 혹은 그믐이라고 하는지. 어제는 왜 그렇게도 잘 보였는지, 보름달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밝았는지.”
사진을 넘기던 손은 어느덧 도달하지 말아야 할 곳에 도달했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비워가던 기억의 한 구석. 이제 겨우 열 댓장이 남은, 100mb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용량의 사진첩이었다. 왜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상관 없는 것 같은 이 사진첩에 오게 되었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알고 봤더니, 어떨 때는 초승달이더라, 또 어떤 때는 상현달이더라. 이럴 때는 보름달이던데, 저럴 때는 하현달이던데. 공부도 해보고, 다른 사람한테 듣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 와서 왠지 모르게 일찍 누워서 핸드폰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날이 있잖아. 괜히 찍었던 사진들 꺼내보면서 정해보는 거지. 이럴 때 예뻤는데, 저럴 때 멋있었는데. 내 스타일은 이거야, 아니, 기분이 울적할 때는 이런 모습이 좋았지. 기분 좋을 때는 이런 모습이 좋았고.”
한 장 한 장, 열어볼 때 늘 엄청난 용기와 자괴감을 필요로 했던 사진들을 아무런 감정의 기복 없이 훑었다. 참 예뻤는데, 참 좋았는데. 이 때는 이랬지, 그 때는 그랬지. 어쩌면 지금이 그 타이밍인지도 몰랐다. 옛 참고서 그득한 책장을 내다 놓을 때, 먼지 덮인 책장처럼 켜켜이 쌓여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흐르는 강물 따라 멀리 씻겨 보낼 때.
“그러다가 문득, 내가 고민했던 모습들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봤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 어찌됐든 한 쪽 면인 거잖아. 보름달이든 초승달이든. 먼 하늘에 걸려있든, 가까운 하늘에 걸려있든 크든 작든 다들 늘 보는 면이라는 깨달음이 드는 거지.”
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그 뒤가 궁금해지는 것.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습 말고, 누구나 예쁘다고 그려보는 모습 말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뒷모습을. 그리고 그 뒷모습, 그다지 예쁘지도 아름답지도 밝지도 않은 모습까지 좋아진다면, 그럼에도 늘 마음에 품고 싶다면…….
“아 그럼, 형 말은……. 그 뒷면이 궁금해지는 게 사랑인 거에요?”
열 댓장의 사진을 전부 선택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장 한 장 체크하고, 남는 메뉴 중에 휴지통 모양의 버튼을 눌렀다. 완전히 삭제하겠냐는 질문이 마지막으로 보여지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엉덩이를 툭툭 털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몰라. 직접 가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