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단편소설
“자, 아 하세요. 말씀하시면 안돼요.”
“에.”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요.”
“…….”
몇 번을 와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소가 있다. 내겐 치과가 그랬다. 올 때마다 누워서 모든 일을 끝내니 몸이 편하긴 한데 늘 소소한 고민들이 생기곤 했다. 눈을 떠야할지 감아야 할지, 뜨면 어디를 봐야할지부터, 침은 삼켜도 되나, 목이 가려운데 긁어도 괜찮을까, 아픈데 이건 아프다고 말을 해도 될지 아니면 참아야 할지…….
대부분 시키는 대로 하면 되긴 하지만, 때때로 그마저도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럼 올해 취직하시는 거에요?”
“아……. 아아에아으에…….”
“말씀하시면 안 된다고요.”
물어보지를 말든가. 온전히 이 사람에게 모든 걸 맡겨야하니 차마 뭐라 따질 수는 없었지만, 답답한 마음은 배 위로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는 것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자, 이제 한 번 다물어보세요. 앙. 그렇지.”
익숙해지지 않는 건 소음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귀를 울리는 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건지 턱 뼈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고, 그렇게 들려오는 소리 자체도 워낙 소름이 돋아서 말이지. 드드득, 치치칙, 끼릭끼릭, 눈을 감을수록 소리에 어울리는 끔찍한 이미지들이 선명해져서 차마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자 한 번 더 다물어 보시……. 아, 아야!”
“아 에어아…….”
“제 손가락이에요, 아야야…….”
이럴 때도 애매하다. 평소같았으면 바로 일어나서 연신 고개를 숙여보이며 죄송하다를 반복할텐데, 지금은 일어날 수도 없다. 말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냐하면 그것도 아닐뿐더러 말씀을 하지 말라고 지시까지 받았으니 그저 답답할 노릇이다.
“야 임마!”
치과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가 귓가를 쩌렁쩌렁 울린 건 그 때였다.
“사람을 깨물면 어떡해?”
반쯤 감은 눈을 뜨고 열심히 굴려봤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과격한 언사를 치과에서 행한단 말인가. 오른편에는 손가락을 감싸 쥔 의사선생님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왼 편에는 그런 모습에도 덤덤한 표정의 간호사가 멍한 표정으로 내 입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료실 안에있는 단 두 사람의 모습에는 전혀 이상한 기색이 없었다. 그 자세 그대로 멈춰있다는 것 외에는.
갑자기 얼굴에 내리쬐는 조명이 강해졌다. 끝이 없는 조명 레버를 누군가 계속 올리고 있는 것처럼.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빛에 하나님이 생각날 때 쯤, 갑자기 누그러진 목소리의 사과가 들려왔다.
“아, 미안. 내가 흥분했다.”
빛은 커질 때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갑작스런 빛에 놀란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인 후에야, 나는 그 목소리가 다름 아닌 머리 위의 조명에서 들려온 것을 깨달았다.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아니, 이 사람아.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조명 기구가 신형이 아닌 건 분명해보였다. 전구를 감싸고 있는 플라스틱 덮개에 누런 때도 그렇고, 움직이는 관절부위마다 거무튀튀한 세월의 흔적이 지저분하게 묻어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말을 내뱉는 목소리와 어투는 먼지털이를 들고 왔다갔다 하시는 집 앞의 슈퍼마켓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 말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을 시키고 그러잖아요.”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그게 어려워?”
목소리는 성향을 대변하는 것인가. 어쩐지 이 조명과는 대화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입 벌리라고 하면 입을 벌리면 되고, 말을 하라고 하면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입을 벌리고 어떻게 말을 하냐고요.”
“말을 왜 못해? 하라고 하면 하면 되지. 요즘 젊은 것들은…….”
울컥하고 뭔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아무리 오래 됐어도 내 나이보다는 많지 않을텐데, 아니면 강아지처럼 1년을 7살로 쳐줘야 하는 건가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지만, 하필이면 마지막 한 마디가 이성의 끈을 툭 끊어버리고야 말았다.
“하지 말라 해놓고 시키니까 웃긴 거잖아요.”
“뭐!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더만.”
“네, 다른 ‘사람’들이었죠? 조명이 아니라?”
“하튼 요즘 젊은 것들은 반항심만 많아서…….”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반항심을 폭발시키는 말을, 이 아저씨는 말 끝마다 반복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기 어려워진 나는 입에 걸려있는 기구를 슥 빼면서 말을 뱉어냈다.
“아저씨, 요즘 젊은 것들은 반항심은 눈꼽만큼도 없고 시키는 대로 해서 문제에요. 시키는 대로 자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렇게 시키는 대로 자기들 미래를 생각하다가 결국 무슨 말을 듣는지 알아요? 노력이 부족하대요.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았더니 노력을 덜했다한다고. 이 쯤되면 누가 문제에요? 뻔히 알면서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이 문제에요, 그렇게 시켜놓고 타박하는 사람이 문제에요?”
“하여튼…….”
“아저씨, 전기 안 쓰면서 불 킬 수 있어요? 아저씨 목 안 움직이면서 꼬맹이들 눈높이 맞춰줄 수 있냐고요.”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대답할 말을 생각 중인 걸까, 아니면 내 투정으로 조명도 화가 난 걸까. 고민하는 사이, 양 옆의 간호사와 의사선생님이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야……. 아유, 당황하셨어요? 땀을 엄청 흘리시네. 전 괜찮아요.”
의사선생님은 얼얼한 손가락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더니, 다시 기구를 집어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픔을 표현하는 건, 쌓여있던 감정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의 댓가를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자, 그럼. 다시 아 하시고. 말씀하시면 안돼요.”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천천히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