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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및 발전 과정

하루 한 편 단편소설

by 봄단풍

그림을 그리는 진섭씨(가명, 25세)는 굳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으며 한숨을 쉬었다. 핸드폰에 강아지 사진을 띄워놓고 노트에 따라 그리려 했으나, 도저히 이 핸드폰이란 녀석이 편한 자세로 몸을 세워주질 않았다. 툭하면 쓰러지고, 노트 위에 놓자니 그리기가 불편하고.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던 글쓰는 승민씨(가명, 28세)는 조용히 안경집을 건넸다. 핸드폰 뒤에 세워두면 보고 그리기 편할 거야. 진섭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게 안경집을 건네받는다. 주르륵. 허나 빈 안경집 보다는 범퍼케이스가 끼워진 핸드폰이 더 무거운 모양이다. 받침대 역할을 해야 할 안경집은 속절없이 뒤로 미끄러졌고, 그 때마다 핸드폰은 무거운 뒤통수를 책상에 박아야 했다.


책임감 때문일까, 승민씨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조용히 자신의 핸드폰을 건넸다. 진섭씨의 핸드폰 보다는 작지만, 역시나 범퍼케이스가 끼워진 터라 책상에서 미끄러질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본인은 글을 쓰기 때문에 딱히 핸드폰이 필요없기도 했다. 결국 진섭씨는 자신의 핸드폰 뒤에 안경집과 승민씨의 핸드폰을 기차처럼 이어서 세워놓은 뒤에야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섭씨의 핸드폰은 천천히 눕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무게 때문인 듯 했다. 어쩌면 책상이 미끄러워서인지도 몰랐다. 잠시 이대로 포기하고 몇 분에 한 번씩 핸드폰을 세우면서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던 진섭씨는 이내 지우개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핸드폰 뒤에 지우개를 세우고, 그 뒤에 안경집과 승민씨의 핸드폰을 세운 뒤에야 결국 그는 본인이 원하던 ‘일정한 각도에서 움직이지 않는 핸드폰’을 구현할 수 있었다.


그 발견에 함께 박수를 치던 승민씨는 실수로 본인의 안경집을 쳐버렸다. 놀라운 것은, 안경집과 승민씨의 핸드폰 없이도 진섭씨의 핸드폰은 지우개만으로도 잘 서 있었다는 것이다. 괜히 머쓱해진 승민씨는 굳이 넣을 필요 없는 안경집과 핸드폰을 가방으로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드디어 해답을 찾은 듯 편하게 한숨을 내뱉은 진섭씨였지만, 막상 그림을 그리다보니 매번 지우개를 쓰고, 다시 핸드폰 뒤에 거치를 해놓는 것은 생각보다 귀찮고 피곤했다. 한 번, 괜찮다. 두 번, 뭐 그럴 수 있지. 하지만 2B 연필로 스케치부터 시작하는 그림에 지우개는 한 번의 획에도 몇 번씩 써야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결국 진섭씨는 다시금 답을 찾아냈다. 처음부터 모든 답은 자신의 손 안에 있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불과 몇 분이 더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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