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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by 사색의 시간

더 있다 가라는 수 아주머니의 따뜻한 말씀을 뒤로하고 다시 달릴 채비를 했다. 아주머니께서 배고플 때 먹으라며 간식까지 싸주셨다. 한참을 달리다 잠시 길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아주머니가 싸주신 간식을 먹어보았다. 짭짤한 양념이 가미된 견과류인데 오독오독 씹는 맛이 꽤 좋았다. 처음 보는 견과류라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뭔지 알아내기 위해 조금씩 아껴 먹었지만, 끝까지 이름을 알 수 없었다.


혼자서 달리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몇 년 전 자전거를 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골절 수술을 받았다. 첫 번째 수술에서 핀을 박았고 몇 개월 뒤 핀을 뽑는 수술을 다시 받아야 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은 뒤로 한동안 자전거 타는 것을 쉬었다. 자전거가 싫어진 건 아니었지만 자전거 탈 생각을 하면 괜히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다시 자전거를 탔을 때도 일반 도로는 무서워서 강 옆으로 나 있는 자전거길만 타고 다녔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까지 와서 도로를 달리고 있다니.


돌아보면 늘 그래 왔다. 겁이 많고 내향적인 탓에 바깥보다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나를 바깥으로 불러주는 게 꼭 하나씩은 있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고 매 주말마다 KTX를 타고 서울로 갔고 탱고 페스티벌에 가고 싶어서 상하이행 비행기 표를 샀다.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래서 수술도 받아야 했지만, 자전거는 여전히 나에게 크나큰 원동력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롯이 내 힘을 써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을 온몸으로 겪으며 달린다는 것이 자전거가 주는 매력이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자주 지치고 우울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에 누워 있을 걸,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일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생각을 안장 위에서 했다는 거다. 내 기분이 어떻든 일단 안장에 올라 페달을 밟으면 여행은 계속되었다. 덕분에 여행을 도중에 멈추지 않고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자전거에 의지를 많이 하게 되었다. 말도 할 수 없고 감정을 느낄 수도 없는 물건이지만, 핸들바를 꼭 붙잡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참 용기 있는 사람이네요.


길에서 만난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날 역시 힘들어서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페달을 굴리고 있는 한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페달을 굴리는 동안은 어떤 잡념들이 속을 괴롭히든 대부분 바람에 씻겨 나가기 마련이다. 바람을 맞으며 다닐 수 있다는 것. 풍경이 지날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냄새를 맡으며 다닐 수 있다는 것 역시 자전거 여행을 지탱하는 즐거움이었다.


게으르고 겁이 많아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된다. 자전거를 타려고 이국에까지 온 걸 보면 분명 그렇다. 안장 위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조바심과 불안을 서서히 내려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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