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최소 한 번은 경찰서에 갔다. 불법적인 문제가 있어 들린 것은 아니었다. 타이완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경찰서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일들이 몇 가지 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고 물을 보충할 수 있으며 안에 앉아서 쉬다가 갈 수 있다. 여기는 여행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 또한 경찰의 임무인 것 같았다. 자전거 여행자든 일반 여행자든 가릴 것 없이 경찰서를 이용할 수 있다. 경찰서 앞에 친절하게 자전거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한국에서도 가본 적 없는 경찰서를 매일 같이 들렸다. 물을 한 병도 사지 않고 라이딩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경찰서 덕분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나중에는 경찰서 소파에 앉아 경찰관들과 대화를 나누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니는 길이 주로 시골의 한적한 마을이라 그들이 바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롄의 한적한 마을을 지나는 길이었다. 여느 날과 같이 물을 보충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어서니 서장님은 일단 앉으라고 자리를 권해주셨다.
-지금 정수기가 고장 나서 시원한 물이 없어. 어쩌지? 대신 생수 몇 병 줄 테니 챙겨 가. 여기서 차도 한잔 하고.
서장님께서 권해주시는 바람에 차까지 대접받게 되었다. 서장님은 자신을 원주민의 후손이라고 소개하셨다.
-타이완 사람끼리는 딱 보면 어느 부족인지 다 알아.
"그래요?"
-나는 아메이족이거든. 얼굴만 보면 누가 아메이족인지 다 알지.
그간 다부족 문화에 대해 알쏭달쏭했기에 평소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부족마다 언어나 문화가 다르잖아요. 그럼 아메이족끼리 모이면 아메이 족 언어를 쓰세요?"
-지금은 거의 뿔뿔이 흩어져 있지. 물론 고유의 언어나 문화가 있긴 하지만 부모님을 통해서 이어져 오는 것이 전부야. 우리 역시 표준어와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를 배워.
여전히 알쏭달쏭한 내 얼굴을 보시더니 서장님도 한 번에 이해시키기엔 무리겠다 싶은 표정을 지으셨다. 대신 잠깐 기다려보라며 어딜 가시더니 커다란 열매가 잔뜩 담긴 봉지를 들고 오셨다.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 건데. 먹어봐.
옅은 연둣빛을 띄고 있는 열매는 달걀만 한 크기였고 깨무니 아삭아삭 소리가 났다. 씹을 때마다 달콤한 즙이 입안에 퍼졌다.
"엄청 달콤한데요. 무슨 과일이에요?"
-이건 대추야.
"대추라고요? 꼭 사과 같아요."
-타이완 대추는 이렇게 크고 달아.
타이완은 대추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씨도 크고 달았다. 자기가 먹으려고 챙겨 온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다. 그럴 때마다 고마움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몇 번이나 사양했음에도 서장님은 더울 때 먹으라며 대추를 챙겨주셨다.
-타이완에 또 오고 싶을 것 같아?
서장님의 질문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침 하루 종일 업힐을 타느라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너에게 타이완이 좋은 곳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또 놀러 오길 바랄게.
여행자에 대한 순수한 호의가 느껴졌다. 음식이 맞지 않고 무더운 볕 아래 땀을 줄줄 흘렸다고 해도, 호의를 베풀어 준 타이완 사람들 덕분에 타이완은 좋은 곳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경찰서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따뜻하게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