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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와서 꼼짝 않기

by 사색의 시간

타이루거를 다녀와서는 내내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했다. 여행은 중반부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대한 과제였던 타이루거까지 다녀왔더니 긴장이 풀린 탓일까. 피로가 몰려왔다.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을 슬슬 드러냈다. 여행 오기 전 들었던 수업이 생각났다. [장기 여행에서는 컨디션 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3일 라이딩 1일 휴식, 혹은 5일 라이딩 2일 휴식. 자기만의 사이클을 가지고 다니세요.] 당시 수업을 들을 때는 그게 뭐 어렵겠나 했었는데 막상 여행을 시작해보니 결코 쉽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 따라주지 않는 체력, 길을 잃거나 새로운 일정이 생기는 것은 라이딩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직결되었다.


자전거로 여행을 한다는 건 그 모든 부담을 짊어진 채 달리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머리로는 쉬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라이딩을 강행하는 날도 있었다. 쉬더라도 아직 남아 있는 길에 신경을 쓰느라 마음을 전부 내려놓고 푹 쉴 수가 없었다. 계속 다음 코스에 대한 압박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루거 가는 길에 묵은 숙소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유난히 적막한 느낌이었지만 때문에 더없이 포근한 공간이 되어주었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주인이 직접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침을 먹으니 기운이 났다. 삶은 달걀, 구운 베이컨 두 조각, 따뜻한 모닝빵과 과일. 간단하다면 간단한 식사였다. 그 식사가 왜 그렇게 위안이 되던지. 아침을 다 먹고 나서도 오래오래 1층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 잠자는 고양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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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을 차려 재정비를 했다. 일단 화롄에서 이란으로 가는 구간을 어떻게 갈지 정해야 했다. 화롄-이란 구간을 갈까요 말까요. 사람이 보일 때마다 그들을 붙잡고 물어보았고 첫날부터 타이루거까지 오는 동안에도 내내 고민한 문제였다. 사람들의 답마저 딱 반반이었다. 경치가 정말 끝내주니 꼭 타야 한다, 안 보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구간이다. 아니다. 그 구간은 너무 위험하다. 큰 트럭들이 너무 많고 빠르기도 엄청 빠르다. 트럭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긴 터널 구간을 혼자 자전거로 지나간다는 것은 무리다. 찬반이 뒤엎어지는 것이 반복되었다. 여행을 하면서 이 구간에 대한 나의 결정은 몇 번이고 번복되었다. 이제 진짜 마음을 정할 시간이 왔다.


나는, 열차를 타기로 했다. 타이루거에서 맛본 터널의 공포가 컸기 때문이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길을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간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도 혼자서,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 찬 속을 통과해 갈 자신이 없었다. 무리하지 말자. 여행 내내 스스로 되뇌이고 있는 말이었다. 꼭 열심히 타지 않아도 괜찮아. 1일 라이딩 2일 휴식이 나의 사이클이라면 그렇게 타면서 가면 되는 거야. 가만히 앉아 쉬는데도 무수한 합리화가 필요했다. 어쨌든 타이루거도 탔고 이란까지 갈 방법도 정했으니 마음이 제법 가벼웠다. 이만하면 하루쯤은 꼼짝 않고 있을만했다. 한국에서 집순이로 지내다가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뒹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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