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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 위로 오르게 만드는 것

by 사색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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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루로우판'은 고기 고명을 얹은 밥이다. 타이완 곳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메뉴라 어느새 친숙해졌다. 음식점 아저씨들과는 어김없이 '화롄-이란' 구간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다. 아저씨들도 기차로 넘어갈 것을 추천해 주셨다. 그래. 좀 아쉽지만 더 이상 미련을 버리자.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해도, 타이완 대부분의 지방은 한국보다 훨씬 차가 없다. 서쪽 도시의 몇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도로를 통째로 빌린 기분으로 다녔다. 야자나무가 보이면 언제든 자전거를 세워두고 그늘 아래서 쉬거나 사진을 찍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까마득한 지평선만이 저 멀리 보이던 서쪽 풍경과는 다르게 쉴 새 없이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주었던 동쪽. 화롄까지 올라오니 산의 풍경까지 볼 수 있었다. 산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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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루거 역은 사람들로 몹시 붐볐다. 입석으로 가야 하는데 자전거 칸이 의미가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이 서서 갈 공간도 부족한 지경이었다. 그 틈에 꾸역꾸역 자전거를 밀어 넣으려니 민망하고 미안했다. 그나마 자전거를 들고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자전거를 들고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자전거가 들어오는데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싫은 소리도 없이 요리조리 핸들바를 돌려 자기 자리를 확보하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자전거를 가져온 사람들과는 자연스레 말문이 텄다. 로드를 타고 온 사람들은 내가 이틀에 걸쳐 가려는 곳을 하루 만에 간다고 했다.


"나도 거기 가는데. 근데 난 내일 도착할 예정이야."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오늘 가자!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무리다. 안전하게 타고 가라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향하는데 주머니에 넣어둔 표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챙겼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개찰구 앞에서 모든 가방을 열어서 뒤지고 있는 나를 본 아저씨 한 명이 '표 잃어버렸어?' 하고 묻더니 지갑을 꺼내 역무원에게 내 표 값을 지불해주셨다. 마치 아는 사람처럼. 왜지? 감사함과 동시에 궁금함이 올라왔다. 우연히 마주친 여행자일 뿐인데 어떻게 보자마자 이런 호의를 베풀 수 있을까. 내가 너무 의심과 이기심에 가득 차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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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역 밖으로 나와서도 내가 가야 할 길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이유 없는 친절을 받을 때마다 혼자 달리며 느꼈던 쓸쓸한 감정들이 씻겨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덕분에 다시 길 위로 갈 수 있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길들을 거쳐 왔다. 거쳐 오면서 그 위에서 스스로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길은 어디로든 뻗어 있다고, 조급하게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너무 두려워하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약간의 여유와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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