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현에 들어서니 도시 느낌이 물씬 났다. 많은 차와 많은 사람들을 보니 반가움에 긴장이 탁 풀렸다.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는데.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설레는 마음에 페달을 밟는 다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란현에서도 자오시는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호텔도 기본적으로 온천호텔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고 꼭 호텔이나 유료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공공시설인 노천 온천공원이 있어서 자유롭게 온천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온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없었기에 온천 호텔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두었다. 그러나 자오시에 가까워질수록 자오시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마다 온천호텔을 예약해뒀다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온천호텔에 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란현에는 자오시의 온천 말고도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지미 공원(Jimmy Park)이다. 지미는 타이완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지미 공원에서는 그의 작품을 조형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타이완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미의 공원이 왜 이란에 있을까. 알고 보니 지미가 이란 출신이라고 한다. 공원은 이란 기차역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다. 가는 길에 둘러봐도 좋을 것 같아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공원으로 들어섰다. 역과 공원이 모두 길 가에 있어 모르고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찾기가 쉬웠다.
조형물 사이로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에서 지미의 그림책을 본 적이 있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낸 책이었다. 그가 태어난 도시에서 그의 조형물 사이를 걷고 있노라니 지미와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공원 구경을 다 하고 나서 자전거를 대놓은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다. 타이완 남자 셋이서 가오슝부터 출발해 환도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숙소도 가깝길래 각자 숙소에서 정비를 하고 다시 모여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들 역시 온천 호텔에서 묵는다고 했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는 자전거 여행자들이 많이 보였다. 경치가 좋고 온천까지 잘 되어 있으니 여행자들이 많이 몰릴만했다. 그중에는 이란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만났던 여행자도 있었다. 기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는데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루트가 같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환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가오슝 남자들과의 저녁식사는 양고기 요리였다. 양고기 볶음, 양고기 무침, 양고기 구이, 양고기 탕. 양으로 된 건 죄다 시킨 것 같았다.
"나는 내일 타이베이까지 갈 거야. 타이베이가 최종 목적지거든."
-우리도 내일 타이베이까지 갈 거야. 만날지도 모르겠네.
역시 목적지가 같지만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누구든 함께 달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을 할수록 혼자 달리는 것에 만족했다. 다른 여행자가 혼자 타고 있더라도 혼자 떠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섣불리 함께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가오슝 남자들처럼 여럿이서 달린다면 더욱 내가 그들의 시간을 침범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각자의 페이스로 각자의 속도로 달리다가 우연히 만나면 그걸로 족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와 그대로 잠들기가 아쉬워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스텝들과 수다를 떠는데 그중 한 명이 온천을 권했다.
-자오시에 왔으면 온천을 하고 가야죠.
"어디가 좋을까요."
-여기도 있어요. 바로 뒤예요.
그랬다. 자오시에는 조그만 게스트 하우스에도 온천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 들어오면서 안내를 받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너무 피곤한 탓에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예. 얼른 옷과 수건을 챙겨 온천으로 들어갔다. 로비 뒤편에 조그맣게 마련된 온천은 탕 하나가 전부였지만 여행의 피로를 푸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무도 없는 탕에서 즐기는 온천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창문 밖으로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탕 안에 한동안 누워 있었다. 자오시에서는 정말 어디서든 온천을 할 수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