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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루거 협곡에 가다

by 사색의 시간

사람이 북적이는 곳은 피하자는 주의였는데 이제는 사람이 몰린 곳이 있으면 슬쩍 가서 기웃거려본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할까 말까 하는 상태로 내내 자전거만 타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진 것도 있었고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을 떠나서라도 타이루거 협곡은 꼭 가야 하는 곳이었다. 아름다우니까.


타이루거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타이루거는 웅장한 대리석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다. 해발고도는 2천 미터가 넘는다. 예전에 로드를 탈 때부터 KOM 대회가 열리는 곳이라고 지명은 들어본 적이 있다. KOM(King Of Mountain)이 굉장히 힘든 대회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 타이루거는 무시무시한 이미지였다. 타이루거를 탈까 말까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타이완까지 와서 타이루거를 안 타고 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간에 포기해도 좋으니 일단 가보자. 페달을 밟는 발짓이 무거워지긴 했지만, 열심히 타이루거로 향했다.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가야 타이루거인데 괜히 오른쪽으로 꺾어본다. 시간 많은 여행자의 여유라고 포장해보지만 타이루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오른쪽 길을 달리니 찰성탄이라는 이름을 가진 해변이 나왔다. 언제 봐도 바다는 좋다. 자전거에서 내려 멀뚱히 앉아있다가 이제 정말 타이루거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왼쪽 방향으로 달렸다. 양옆으로 나무가 무성한 좁은 길을 혼자 달리려니 대낮인데도 조금 으스스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마다 꼭 찹쌀떡을 먹어보라고 했다. 마침 길가에 커다란 찹쌀떡 가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들어가 봤다. 손으로 직접 빚어낸 찹쌀떡이 쫄깃하고 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타이루거 가기 전에 이곳저곳 계획에도 없는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타이루거에 도착하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부터 잡았다. 최대한 가볍게 타이루거를 타고 싶어서였다. 짐을 전부 방에 두고 핸들바 백 안에도 최소한의 물건만 남겨두고 모조리 빼놓았다. 인터넷으로 찾을 때는 타이루거 주변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는지 정보가 없어서 눈에 띄는 대로 들어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타이루거쪽으로 갈수록 게스트하우스가 많이 나왔다.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면 왕복하는 수고를 좀 더 덜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몇 키로 차이 나지 않을 테지만 곧 타이루거를 탄다는 사실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꼭 이런 식이다. 설레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갈 수도 있을 텐데 걱정하고 부담스러워하느라 즐기지 못한다. 그래 놓고 또 꾸역꾸역 가기는 간다.


타이루거 입구에 섰다. 왼쪽으로 보이는 문을 통과하면 협곡이 펼쳐지고 오른쪽 길을 타면 타이루거를 둘러가는 일반 도로가 나온다고 했다. 나는 왼쪽 문으로 들어가 협곡을 속속들이 구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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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절벽 위로 펼쳐진 길과 협곡이 보였다. 너무 웅장해서 사진에 다 담기지도 않았다. 그저 입만 벌어졌다. 머리 위로는 낙석의 위험이, 길 옆으로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막상 달릴 때는 풍경에 도취되어 위험하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그래도 헬맷은 필수다. 처음 보는 낯설고 멋진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영화나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협곡은 꽤 넓은 면적에 걸쳐 이어져 있었고 그곳을 전부 달릴 수는 없었지만 타이루거를 누볐다는 사실에 뿌듯한 하루였다. 타이완에 자전거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간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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