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
눈뜨자마자 헬스장에 다녀왔다. 너무 좋다. 행복하다. 눈뜨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헬스장에 간다는 게 꿈만 같다. 하루를 내가 원하는 대로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줌바를 했다. 예전에 체육회관에서 발레를 들었는데 바로 옆 교실이 줌바였다. 바로 옆에서 줌바를 하는데도 그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기도 했고, '나는 저런 걸 할 수 없을거야'라는 생각도 들어있었던 것 같다. 시드니 헬스장에서 처음 줌바를 해봤을 때, 되게 재밌었다. 특히 강사가 마치 자신의 콘서트라도 하는 양 정말 즐기면서 수업을 해줘서 그 에너지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지금 다니는 헬스장에도 줌바가 있어서 가봤다. 이번 선생님도 에너지가 매우 넘쳤다. 게을러서 유산소를 안하는 편인데 (런닝머신도 안 뜀) 줌바를 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줌바에도 라틴 댄스 동작이 꽤 많이 나오는데 역시나 그럴때마다 허우적거렸다) 눈뜨면 바로 헬스장이니 당연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공복에 운동을 한다. 집으로 바로 와서 식사를 하면 괜찮지만 자꾸 여기저기 샛길로 빠지니까 배고파서 힘들었다.
맛있는 핫도그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핫도그집 문이 닫혀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오잉 저게 뭐지? 하고 어떤 건물에 들어가봤다. 시에서 혹은 구에서 운영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쉴 수 있도록 주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이었다. 오호. 헬스 끝나고 낮 작업을 여기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핫도그 먹으러 갔다가 작업실을 발견하고 돌아왔다.
배가 너무 고파져서 오징어, 어묵, 미역, 당면, 떡볶이 소스, 떡을 샀다. 집 근처에 마트가 여러 개 있는데 이 마트에는 오징어를 안 팔고 저 마트에는 떡볶이 소스를 안팔고 해서 드래곤볼 모으듯 여러 마트를 돌며 재료를 준비했다. 무슨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볶이라도 해먹을 사람처럼. 저녁에는 오징어랑 당면이랑 미역을 넣고 떡복이를 해먹을 거다. 신난다. 미역을 왜 넣냐면...그냥 미역이 너무 먹고 싶다. 최근에 오징어도 너무 먹고 싶었다.
제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오늘 하루 일과를 주절거렸다. 평소에 말할 사람이 없으니 여기 대고 주절주절한다. 어쨌든 뭘 얘기하고 싶었냐면, 이번에도 역시나 내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거다. 백수가 되면 꼭 그렇다. 어딘가 도사리고 있던 애들이 작정하고 내 앞에 나타난다.
2017년 2월 16일에 <백수의 감정사전> 이라는 글을 썼었다. 찾아 읽어보니 당시 내가 마주했던 감정은 세 가지였다. 귀찮음/두려움/부러움 이었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 귀찮음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왜냐면, 눈뜨자마자 헬스장을 가니까! 너무너무 좋다. 귀찮음 같은 건 없다. 그리고 요리도 잘해먹는다.
두려움은? 뭐...안 두렵다고 할 순 없겠지만 '어우 얘 좀 버겁네?'할 만큼 내 일상에 지장을 주는 감정은 아니다. 뭐랄까...좀 친숙해지는 것도 같다. 두려운데 어쩌라고;;; 이러면서 그냥 할 거 한다. 할 거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는 걸 아니까. 확실히 호주에 다녀온 뒤로 귀찮음과 두려움이 많이 해소된 것 같다. 친구도 없고 말도 잘 안통하는 낯선 땅에 떨어진 감각이란, 나 스스로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바로 X되버릴 것 같은 감각이었다. 그래서 뭐든 했다. 하니까 다 하게 됐다.
와우. 2017년에 세 가지였던 것이 한 가지로 줄어든 셈이다. 장하다. 짝짝짝. 일단 박수 좀 치고. 이제 나에게 남은 감정은 '부러움'인데...이 애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우월감과 열등감이 무슨 백년묵은 나무의 뿌리처럼 깊게 얽혀있다. 골치 아프다. 부러움이란 '사실 나도 저렇게 되야 해'의 다른 말이었다.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 집> 처럼 말이다.
내가 그렇게 되야 되는 거면, 내가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면 되지 왜 타인을 부러워하고 자빠져 있는걸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시원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깨달은 것만 해도 많이 왔다고 생각한다. 어제 자려고 누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남을 부러워하느라 정말로 많은 에너지를 썼구나...웃기다. 그 시간에 나나 돌보지, 왜 타인을 부러워할까? 계속 알아가 볼 문제다. 알아차린 만큼 그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돌리려고 노력해야겠다.
좀 의외다. 끝까지 남는 놈이 두려움일 줄 알았는데 부러움이라니. 어쩌면 부러움이 다른 감정들의 시초였던걸까? 어제 명상을 하는데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질투하는 나를 깊이 받아들입니다.' 순간 엥? 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나를 깊이 받아들입니다.' 라고 하면 수긍이 된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질투하는 나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말 자체가 말이 안되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나는 질투와 부러움에 아직 풀지 못한 뭔가가 있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