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돌아오라

더 함도 덜 함도 없이

by 사색의 시간

원래 오늘 글의 제목은 <작심삼일은 진리인가요> 였다. 눈 뜨자마자 헬스장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명을 하자면 어제 밤 9시까지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빈둥거렸다. 하루에 써야하는 글의 양이 있는데 한 자도 못 썼으니 불안과 초조와 안달감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쭉 빈둥거렸으며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이래선 안 돼!' 하고 책상에 다시 앉아 겨우 500자 정도를 쓰고 잠이 들었다. 우울하거나 절망적이진 않았다. 조금 낙담했을 뿐이다. '너 정말 그럴거니. 넌 정말 그냥 놀고 싶었던 거니.' 이렇게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잠들었다. 오전 7시에 잠들었고 눈을 떴을 땐 11시였다.


일어났는데,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뒷목이 뻐근하긴 했다. 나아지겠지 하고 냅뒀는데 점점 심해졌다. 어제까지는 목을 옆으로 돌릴 때 좀 아픈 정도였는데 오늘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뒷목에서 어깨까지 찌릿거리는 통증이 있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허리가 튼튼해야 한다며 매일 헬스장에서 허리 강화 운동을 했다. 그런데 허리가 문제가 아니라 목이 문제였다.


병원에 가니 이 증상은 대게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첫째는 (참으로 당연하게도) 스트레스 과다, 둘째는 과도하게 일부러 군대식 자세를 취하는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했다. 플랫백 현상이라나. 경추는 원래 자연스러운 곡선인데 의식적으로 꼿꼿한 자세를 취하는 사람은 곡선이 직선이 되고, 그러면 하중을 견딜 수 없게 된 경추가 틀어지게 된다는 거다. 나는 왼쪽으로 틀어진 상황이었다.


억울했다. 바른 자세로 살고 싶어서 일부러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게 도리어 경추를 뒤틀리게 만드는 원인이라니. 한편으로는 뭘 그렇게 꼿꼿이 살려고 애써왔나 싶기도 했다. 올곧아야 해! 올곧아야 해! 내 몸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 같아서. 내가 올곧음과 어울리는 인간인가?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올곧음을 강요한 건가? 의아할 정도였다. 내 몸은 웅크릴 때 잔뜩 웅크러들고 웅크리지 않을 때는 올곧아야 해! 하면서 일부러 경직된 자세를 만드는 바람에 탈이 났다.


병원에 갔다가 어제 발견한 작업실로 갔다. 어제 1000자도 못 썼기 때문에 헬스보다 작업실에 먼저 갔다. 글을 좀 쓰고 나서 헬스를 하러 가기로 했다.


작업실에서는 다행히 글이 어느 정도 써져서, 4천자를 썼다. 쓰면서 느낀 건데 글자수로 나를 압박하지 말아야겠다. 그건 쓰기 시작하면 알아서 된다. 깐깐하게 글자수 하나하나 세가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면 안되겠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경추가 뒤틀릴 것이다.


4천자 정도 쓰고나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 아니야. (여기서 '못'이란 질이 아니라 양을 말한다) 충분히 쓸 수 있어. 그런데, 확실히 작업실이 필요한 것 같아.


적절한 때에 놀라운 우연으로 적절한 작업실을 구하게 되어 기뻤다. 딱 이런 환경이 내가 작업하는데 적합한 것 같다. 개인 작업실은 말이 안된다. 그건 그냥 집이랑 다름없다. 넓은 공간에 다른 사람들도 와서 자기 할 일을 하는, 그러면서도 서로 신경쓰지 않는 지금 분위기가 딱 좋다. 혼자 있고 싶어서 일까지 그만뒀지만, 결국 사람들과 이어져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딱 이 정도로 이어져 있는 것이 좋다.


저녁에는 헬스를 갔다. 드디어 요가 수업을 들었다. 여전히 되는 동작이 없었지만 여전히 좋았다. 요가를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옆사람과 끊임없이 비교한다는 거다.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하네.', '훗, 이건 내가 더 잘하지?' 이런 마음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내가 더 잘한다고 느꼈을 때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한다는 생각은 아무 근거도 없다. 저 사람이 더 잘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허상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더 못한다는 생각 역시 근거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동안 부러울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 '좋겠다' 라는 낱말을 다른 어떤 말로 대체해야 할 지 고민했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등감에서 찾을 때 보이지 않던 답이 우월감을 들여다볼 때 나왔다. 부러움의 시초는 열등이 아니라 우월이었나보다. 내가 잘났다는 아집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내가 우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내가 열등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필연적으로 한 세트다. 내가 누구보다 우월한 것 같을 때, 그리고 누구보다 열등한 것 같을 때, 나는 이렇게 외치기로 했다. <나에게로 돌아오라>


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하지만 옆 사람과 비교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도토리의 키를 재는 것은 상대적이며 일시적이다. 정말로 성장하고 싶으면 오직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뒷목이 경직된다.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경직되지 않는 것. 두 가지 과제를 얻은 날이다. 건강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심각하게 살지 않기'가 되었다. 목이 돌아가지 않을 만큼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고 신나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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