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는 미래를 아름답게 만든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해야 직성이 풀렸다.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당장 뛰쳐나가 배워야 했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동네까지 찾아가서라도 먹어야 했다 (그건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다보니 삶이 좀, 엉망진창이었던 것 같다. 욕구라는 게 한 번에 하나씩 차례차례 줄지어 오는 것이 아니기에, 물밀듯 밀려오는 욕망을 모두 해소해줄 수는 없었기에.
백수가 되면서도 그랬다. 빈 시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시간처럼 여겨졌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또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보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을 느꼈다. 첫번째로, 나이가 들었다. 기력이 받쳐주지 않으므로 이것과 저것을 모두 할 수 없다. 나는 이 점에서 나이든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능력에 한계를 짓는 것 같겠지만, 나에게는 포근한 울타리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딸려서 더 이상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없을 때. 딱 하나만 할 수 있을 때. 그때 당신은 무얼 하겠는가. 나이듦이 내게 묻는다.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이를 먹은 덕분에 우선순위가 생겼다.
우선순위가 생기자 다른 욕망들의 크기가 훅 줄어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너도나도 몸집을 이따만큼 키워서 씩씩대고 있더니, 우선순위 하나 딱 세워두니 그 앞에서 몸들을 움츠렸다. 그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우선순위만 잘 돌보면 된다. 그럼 나머지 것들은 알아서 컨트롤 된다.
너무 하고 싶어서 손발이 드릉드릉했던 일이었는데 다시 돌아보니 안해도 인생에 전혀 지장없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만 같던 일도 다시 돌아보니 지금 안해도 아무 상관 없을 것 같다. 우선순위 앞에 데려다 놓고 '얘보다 쎔?' 물어보면 다들 조용히 돌아간다. 그러니 우선순위는 제일 쎈 놈으로 골라야 한다.
그렇게 물러간 욕망들을 아주 보내는 건 아니다. 뒤로 밀려난 것들을 하나하나 어딘가에 놓아둔다. 그게 계획이라는 거다 (이때까지 몰랐다). 작은 욕망들을 미래 시간표에 하나하나 놓으니, 미래가 예뻐졌다. 내일이, 일년 뒤가 기대되었다. 지금 당장 듣고 싶었던 수업을 다음 학기로 미루었다. 내년 3월은 얼마나 눈부실까. 절로 웃음이 났다.
우선순위가 서니 자연스레 계획이 만들어졌고 미래가 만들어졌다. 그때가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이 감각이 기분 좋다. 감사하다. 앞날이 기대되는 나날이라니.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다. 롸잇 나우! 만 외쳐댔던 내가 욕망을 적재적소에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가고 있다. 우선순위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