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기를 쓸까말까 하다가 귀찮아서 말기로 했다. 그러나 자려고 누운 지금 폰을 들어 결국 쓰고있다.
(늘 그렇듯) 쓰려고 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나는 최근에도 변함없이 늘 도서관에서 책을 받아보고 있다. 어쩌다 그 책을 알게 된 것인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빌린 책 중 하나를 며칠에 걸쳐 읽었다.
참 지루하고 재미 없기도 한데 나는 왜 이것을 읽고 있나. 뭔가 끌리는 구석이 있긴 한가보지. 그것이 책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나는 발췌를 하고 싶은 페이지만 표시해둔 뒤 나중에 그 페이지를 다시 열어보아도 전에 발췌하고 싶었던 구절이 눈에 들어오는가 시험하는 타입이다.
때문에 읽을 당시에는 절절히 다가왔던 문장들도 며칠 뒤 같은 페이지를 폈을 때는 아무리 눈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어 스스로를 멍청하다 생각하는 적도 많다.
표시해둔 페이지가 56장이면 며칠 뒤 다시 열어봐서도 발췌하고 싶은 문장을 찾아내는 곳은 30장 정도에 불과하다. 발췌작업으로 보자면 상당히 비효율적이지만 내게는 게임같이 느껴지기도 해서 이 멍청한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오늘도 읽은 책을 발췌하는데, 문장을 옮겨적으며 저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하게 되겠구나.
내 작은 방에는 뭐든지 아주 조금씩만 있다. 옷도, 라면도, 책도. 미니멀리스트는 전혀 아니다. 다만 집이 좁아서이다. (나는 전자레인지도 없다. 사람들은 전자레인지 없이 어떻게 사냐고들 묻지만 냉동식품을 후라이팬에 데워먹으면 된다. 햇반은 냄비에 끓여 먹으면 되고. 그러면 굉장히 삽질하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결국 제대로 된 요리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 편을 택하게 된다.)
내 책장-은 아니고 신발장에 책을 넣어두었다. 신발이라곤 운동화가 전부였으니까-에는 본가에서 선별해온 열 몇 권의 책만이 꽂혀있다. 선별 기준은 단순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을까?그래서 이미 읽었던 책보다는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의 비율이 높긴 했다.
자기 전에 문득 책장을 열었다. 신발장을 창고처럼 쓰고 있어서 다른 물건을 꺼내려고 한 것이었다. 무심결에 책이 꽂힌 쪽으로 눈이 갔는데,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읽고 발췌했던, 그러면서 저자를 좋아하게 될거라는 예감을 했던 그 자의 책이 내 책장에 몇 권이나 이미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 중 어떤것은 조금 읽어보았고 어떤것은 들춰보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그 책도 내가 가지고 있던 소설의 제목을 고쳐 발간한 개정판이었다.
이런 걸 취향이라고 하나? 뭐가 됐든 인간이 한결 같다는 사실에 소름 끼쳤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너무 분명해져서 소름이 돋았다. 이 정도로 명확하면, 한치 앞도 모르는 나지만 나란 인간이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어렴풋이 알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