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일주일 전부터 그러니까 4월이 시작될 때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럴 때마다 뭐가 문제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므로 그저 이런 나를 받아들여보고자 한다. 그렇구나. 나는 아무 것도 하기 싫구나. 회사 와서 농땡이 부리면서도 출근 조차 하기 싫구나......
그렇다고 정말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아닐 거다. 오늘 한 일을 써본다.
다음주 월요일까지의 간략한 일정을 세워두었으며 (이름하여 '이래서는 안된다' 계획표)
짤막한 독서를 했다. 요즘 하루에 만보 이상 걷고 있는지라 <걷는 사람, 하정우> 라는 책에 관심이 갔다.
누구에게나 문제 없는 날은 없고 고민 없는 날도 없다. 고민이 머릿 속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어깨 위를 올라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간다.
하정우가 배우로서 어떤 배우인지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좋은 배우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튜브도 하나 봤다. 요즘 나의 처지와 딱 들어맞는 내용의 영상이었다. 최근 나는 마음에 드는 가방을 고르느라 하루종일 인터넷 쇼핑을 하는 짓을 지금 며칠 동안 계속 하고 있다. 이 영상의 주제는 '사물과 자아의 관계'라고 할까.
'에고'는 과거에서 만들어진 내용과 구조로 형성되는데 내용은 '동일시'이며 구조는 '강박관념'이다. 동일시란 대상과의 연결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무의식적인 관념이다. 차를 사면 기분이 좋고 뭔가 우월한 사람이 된 것 같은게 이 에고의 작용 때문이라고 한다.
에고의 만족은 오래 지속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찾고, 계속해서 소비하게 된다. 사물에서 자아를 찾으려고 하는 행위는 사물을 존중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식으로 나와 사물의 관계를 되돌아보기를 권하는 내용이었다. 오늘만해도 나는 나무가 그려진 가방을 보며 '그래, 이걸 매면 꼭 숲에 와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질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다. (가방은 뒤로 매서 그 그림을 내가 보지 못하는 시간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나는 왜 가방 하나에도 이토록 자아를 부여하려고 하는 걸까? 에고에 휘둘리지 말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바라볼 수 있도록 좀 더 깨어있고 싶다.
그리고 온라인 글쓰기 수업의 과제를 해냈다. 그러니 오늘 하루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와중에도 애써 '읽고 보고 썼다'. 짝짝짝. 칭찬의 박수.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인간은 뭔가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아니 진짜 괜찮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괜찮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라는 박탈감으로 보냈으나 그 시간들을 새로이 돌아볼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 안에서도 나는 열심히 먹고 자고 숨쉬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용서한다. 용서의 궁극의 목적은 과거의 감정과 기억들로부터 해방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