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기본을 이제야 뗀 기분
내가 팀원 간의 변경된 스케쥴을 공지하는 과정에서 A씨가 기분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때문에 오전 내내 자책에 빠져 있었다. 나는 왜 제대로 일을 처리를 못한 거지? 내 딴에는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놓았는데, 사실은 배려가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시시콜콜한 것까지 체크하는 사람으로 볼까봐 두려워서 피한 것 아닌가, 그건 시시콜콜한 것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말도 안 되게 괴로워졌다. 뭐가 잘못인지 인지하고 그것을 고치면 되는데, 생각은 그렇게 하는데 마음은 끝없이 곤두박질쳤다. 내가 너무 잘못했어. A씨는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 단 두 문장에서 파생되는 자책이 내 마음을 그렇게나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감정이 1분도 아니고 5분도 아니고 10분, 30분 이상 지속되는 것을 관찰하고 있으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스스로를 괴롭혀야 하는 문제인가? 내가 이 기분에서 벗어나려면 뭘 해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A씨에게 사과하기' 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그래, 조금 있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면 A씨에게 사과하는 거야. 그제야 내리쬐는 햇살이 따스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바깥을 조금 걷다가 A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아까 저 때문에 많이 번거로우셨죠, 정말 죄송해요. 이 팀에서는 A씨 혼자 지원해서 이번에는 다른 팀에서 하게 되었어요. 다음에 A씨 팀과의 자리도 꼭 만들어 볼게요."
그러자 A씨도 아까의 곤란했던 기분을 털어놓으며 "아, 다른 팀에서 했군요." 하고 수긍해주었다. A씨는 어떤 기준으로 자신이 제외된 지 몰랐기 때문에 이유를 듣고 나서는 조금 누그러지는 듯 보였다. 사과를 하고 돌아오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나아진 듯 했다. 다른 팀에서 하게 되었다는 걸 내가 미리 설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만.
오후 근무를 하는데 B씨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B씨는 곧잘 자신의 문제를 내게 말하곤 한다. 나 역시 B씨가 털어놓는 문제들을 듣고 함께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용기를 내서 내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A씨와 그런 일이 있어서 사과를 하고 왔다고,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했다. B씨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그래요, A씨도 당황스러웠겠어요. 하지만 그건 실수도 아닌걸요! 괜찮아요." 라고 해줬다. 그 말까지 듣고 나니 마음이 완전히 괜찮아졌다.
아침 - 점심 - 오후, 시간과 사건의 경과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명백히 바뀌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이것이 대화의 기본이었나 싶다. 대면하고, 갈등이 생기고, 조율하고, 해소하는 일련의 과정이 하루 업무에 고스란히 담겼다. 기본임에도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아마 그동안 내가 '조율'의 과정을 겪지 않았기 때문일거다. 나는 갈등이 생기면 이제 완전히 끝장이라 생각했다. 조율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상대도 나도 기분이 엉망인 채로 그렇게 업무를 주고 받았다.
감정을 회피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이게 가능한 거구나,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해낸 기분이 들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이어진 관계를 단칼에 잘라내기도 하지만 결국은 건강한 관계를 향해가는 토대가 되어줄 거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좋은 분들이셔서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