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과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신념
자유롭게 뻗어가려는 생각과 행동들에는 제약이 걸리기 십상이다.
안될 거야, 아닐 거야.
애써 부정하는 이유는 사실은 긍정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내 인생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가 '머뭇거림'이다. 누군가는 '너처럼 추진력 좋은 사람이 어딨다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행동들은 몇 백 몇 천 번의 머뭇거림 후에야 나온 것들이었다. (성질이 좀 급한 것도 있다.)
최근의 나를 돌아보다 '아 이랬으면 좋았을 걸'하고 아쉬워한 일들이 모두 한 가지 신념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들이 상대에게 '부담될까 봐' 하지 못했다. 상대방이 부담될까 봐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 립스틱 색깔이, 액세서리가 달라졌네요 라고 말하고 싶고 그게 예쁘다고 말하고 싶은데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울까 봐, 그런 언행이 외모를 평가하는 일이 될까 봐 조심스럽다.
오늘도 그랬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일하는 태도나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데 '마주 보고 있는데 불쑥 수첩을 꺼내서 메모를 하면 불쾌해하시려나, 부담스러워하시려나, 괜히 내가 적는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더 아끼시거나 반대로 더 하려고 하시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메모하지 못했다.
예전에 발레를 배울 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발레 선생님이 결혼을 하신다기에 축하를 하고 싶었다. 그간 수업을 해주신데 대한 고마운 마음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케이크를 사고 카드를 썼다. 그런데 그걸 전해 드리려니 두려웠다.
'괜히 내가 오지랖을 떠는 거 아닐까. 선생님은 친구들이랑 조용히 축하하고 싶어 할지도 모르는데 일개 수강생인 내가 결혼을 축하해도 되는 일일까?'
그런 생각 끝에 그래도 축하와 감사를 전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선생님께 준비한 것을 드렸는데,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발레 수업이 끝나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내리막 길을 걸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 아니고 20대 중후반 다 큰 성인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머쓱)
그나마 그것이 가능했던 건 '축하와 감사'는 긍정적인 감정이고, 긍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다른 감정들보다 조금 더 원활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감정조차 앞에 '개인적인, 사적인' 따위의 수식어가 붙으면 금방 얼어붙고 만다. 발레 선생님이 '선생님'이라는 일종의 공인이어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메모를 하고 싶고 아무 이벤트가 없어도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는 친구의 사진을 찍고 싶다. 쓰고 싶고 찍고 싶은 욕구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친구가 부담스러울까 봐.
머뭇거리느라 마음이 불편했던 한 주를 보낸 뒤 그 욕구들을 '드러내 보자'라는 다짐을 해본다. 물론 그것들을 불쾌해하고 무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확률로 그것들을 흔쾌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50%의 확률 때문에 내게 소중할 50%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불쑥 수첩을 펼치거나 불쑥 카메라를 꺼내 들지도 모르겠다. 약간 선을 넘고, 그래서 약간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을지도 모른다(이건 평생 들은 건데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그래도 이제는 그래 보고 싶다. 부담스러울까 봐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부담스럽지 않아'라는 대답을 찾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