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review moments

체계화하라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 6

by 사색의 시간

아침부터 기분이 잔뜩 가라앉았다.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중에 나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왜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방법도 하나 모를까? 한심해했다. 뭘 해야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 일단 발스를 틀었다. 쿵짝짝 쿵짝짝 세 박자로 이어지는 발스를 듣다 보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도 같았다. 탱고 음악은 나무의 질감을 떠오르게 한다. 힐로 마음껏 긁어대던 마룻바닥의 질감. 그것을 떠올려도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건반을 치듯이 발끝을 튕기던 감각을 떠올린다. 춤을 추고 싶은 걸까?


보기 싫은 자신을 바라보다가 "그래, 지금 딱 이 책을 읽기 좋은 타임이군!" 하면서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를 꺼냈다. 6장 제목은 체계화하라. 그렇다. 감정을 체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오호. 조금 호기심이 들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온다.


[어떤 영역의 지식을 요약하는 것은 종결을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다. 요약된 것은 무엇이든지 익숙하며 침착하며 안정된 느낌이 든다.]


이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정말 요약에 그런 힘이 있나? 내가 나의 하루를 요약하지 않아서 침착하지 않고 안정되지 않은 걸까? 책에서는 일단 '나의 정서에 관해 내가 가진 질문'을 써보라고 한다. 이것이 첫 번째 과제다. 잠시 16개의 빈칸을 채우고 넘어가겠다.


1. 나는 왜 저녁만 되면 기분이 가라앉을까?

2. 나는 왜 기쁘든 슬프든 자주 우는 걸까?

3. 나는 왜 경직되어 있을까?

4. 나는 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곧잘 까먹는 걸까?

5. 나는 언제 기분이 좋을까?

6. 언제 사랑을 느낄까?

7. 언제 안정감을 느낄까?

8. 두려움의 근원은 뭘까?

9. 내가 알려고 하는 여러 가지 감정의 '원인'을 알 필요가 있는 걸까?

10. 아니면 그냥 그것들을 헤집는 대신 추구하는 방향에 집중해야 하는 걸까?

11. 나는 왜 질문만 하고 대답은 안 하는 걸까?

12. 나는 왜 주눅이 들었을까?

13. 가슴이 왜 아플까?

14. 오래된 부정적 정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걸까?

15. 나는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16. 나는 포기하는 법을 알까?


본문에서 예시로 든 목록을 읽어가다가 '내가 듣기에 가장 모욕적인 말'이라는 부분에서 나의 정서가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딱 떠오르는 말은 없는데, 저 구절을 보는 순간 굉장히 정서가 거칠고 불안해졌다. 나는 그런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걸까?


그다음 체계화 방법은 '비율로 나누기'이다. 책의 예시는 이렇다.


[성격에 영향을 미친 것]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배경 23%

유전적이고 신체적인 특성 20%

양육자, 부모와의 초기 인간관계 25%.......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서를 이루는 것들의 비율을 적어보는 거다.


나는 이 예시를 보면서 '부모의 영향이 25% 밖에 안된다고?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다가 4분의 1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렇게 비율을 나누면서 그것들이 나의 정서를 구성한다는 것이 일종의 규칙이며, 따라서 그 정서를 느끼는 것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군요. 나의 증오에도 자책이 없을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만든 비율 목록을 토대로 어떤 요소가 어떤 감정을 야기시키는지 써본다.]


오, 이건 꽤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내 감정의 토대와 시발점을 확인하는 일이니까. 확실히 명료해지고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결론을 내려야 할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귀찮아서 안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은 한 번 해보시기 바란다.


체계화를 하면서 역설적으로 정서란 얼마나 복잡한지, 얼마나 혼합되어 있고 서로 끊임없이 충돌을 일으키는지 인지한다. 다음 장을 넘기니 바로 '역설적'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인간의 본성은 역설적이다. 때때로 우리를 괴롭힌 사람 역시 마음을 끄는 매력적인 요소가 조금은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그렇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 때때로 우리는 매우 가깝게 느끼는 사람의 의미심장한 모습을 읽지 못한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축복은 동시에 최악의 저주가 될 수 있다.]


나는 바꿔 묻고 싶다. 나의 최악의 저주는 어떻게 가장 강력한 축복이 될 수 있을까?


다음 과제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적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신념 (여기서는 '도식'이라고 부른다)을 써보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용한 것으로 바꾸어 써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가정이 항상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 나의 신념이 이토록 강한데 유용한 것으로 바꿔 써보는 것만으로 어떻게 바뀌지? 그걸 부정하면 그만 아닌가? 반발심이 드는 걸 보니 또 부적절하고 자기 파괴적인 신념이 날뛰고 있는 듯하다.


'자각'과 '명료화' 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그 정서에 '일관성 있는 관점'을 부여해 준다. 상반되는 요소들이 혼합된 [정서]라는 거대한 덩어리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질지, 어떤 부분에서 일관성을 느끼는지 탐구하는 단계로 마무리 될 수 있다.


후. 이렇게 한 장을 읽었다. 글을 쓰기 전보다는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기분이 나쁠 때는 기분에 집중하지 말고 다른 뭔가를 합시다. 다음 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한계와 정서 조절 실패를 다루는 방법'을 보여 준다고 한다. 매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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