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독서 기억>을 쓰고 메일함에 들어갔다. 소설 공모전 결과 발표일이었는데 메일이 없는 걸 보면 떨어진 모양. 그런데 다른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문학과 지성사의 <문지 스펙트럼> 서포터즈 2기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서포터즈로서 내가 읽게 될 책은 <꿈의 노벨레>. 책 소개를 보고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는 심정으로 신청했던 건데 선정이 되어 기뻤다.
<꿈의 노벨레> - 슈니츨러 문학의 주제는 황금빛 에로스와 어두운 죽음이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출판 및 배포가 금지되어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로 남아 있던 슈니츨러. 그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책은 서로 다른 에로스에 빠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욕망을 파헤친다.
남편은 현실적인 세계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에로스의 세계에 빠져든다. 부부의 감추어진 욕망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자연과학적인 결정론에서 벌거벗은 육체를 재확인하고, 민망하여 얼굴을 돌리고 싶을 때에 슈니츨러의 문학은 시작된다.
<꿈의 이야기>라고도 불리는 이 책은 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이기도 하다.
도서에 관한 글은 '기록'으로 쓰는 편인데 꿈의 노벨레를 읽고 나서는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도록 써봐야겠다. 좋은 기회를 주신 문학과 지성사 측에 감사드린다.
연휴 동안 <글쓰기의 태도>를 읽었다. 부제는 '꾸준히 잘 쓰기 위해 다져야 할 몸과 마음의 기본기'. 독서 기록을 남겨둬야겠다 생각했는지 이렇게 적어뒀다.
[재밌다. 명쾌하다. 탁월하다. 기분이 좋은 탓인지 이 책을 극찬하고 싶다. 매 챕터당 ‘레슨’과 To do' 항목이 있는데, 재치가 넘치며 주옥같다.]
이런 류의 책들이 그렇듯 내용은 결국 '쓰려고 마음먹고 반드시 실행에 옮겨라. 한 문장이라도 일단 쓰라'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지겹지도 않고 새롭게 들린다. 심지어 재밌다. 누군가 끊임없이 '글을 쓰라'라고 부추긴다니, 얼마나 재밌는가. 마치 '나만 죽을 순 없다'라고 유혹하는 것 같다.
평소 나는 '침대에서는 잠만 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그곳이 어디든 써라. 침대를 벗어나기 힘들다면 침대에서 책 한 권을 써보라'는 챕터가 나온다. 오오. 침대에서 책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해봤는데. 이로서 '여긴 침대니까 글을 쓸 수 없어'라는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저자가 작가가 되기 위한 요소 중 '마음 챙김'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챕터의 To do는 이런 식이다.
1. 다음에 화가 날 때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하라.
2. 다음에 침울해질 때는 침울해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라.
3. 다음에 질투가 날 때는 질투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라.
작가가 되기 전에 열반에 먼저 오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실제로 무언가를 창조해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작품을 위해 뜨거워지기를 두려워말라. 흥분하라! 약간 미쳐도 좋다. 불교는 차분하다. 욕망과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런지 계율을 가르치는 스승은 글을 많이 쓰는 편이 아니다.
작가라는 인간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존재이며 그야말로 욕망 덩어리다. 그들은 섹스를 갈망하고 쥐꼬리만 한 돈을 갈망하고 노벨상을 갈망한다. 그들은 미친 듯이 원하고, 너무 원해서 괴로워하며, 욕망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살아 있다. 이 넘쳐흐르는 욕망을 효과적으로 조절하느냐 못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하지만 이처럼 춤추는 욕망이 없다면 작가들은 줄줄이 양로원 복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처럼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불타는 욕망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겠다는 목표를 세우자. 그 목표를 존중하자. 그리고 격렬해지자. 그러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레슨 : 당신이 가진 욕망에 불을 붙일 때 새로운 세계가 탄생한다. 너무 냉담하지 말고 너무 거리 두지 말고 너무 침착하지 말라. 그러다가는 본인도 굶고 예술도 굶는다. 타오르자! 이 타오르는 불길 안에서 묘사할 가치가 있는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돈을 갈망하는 게 아니라 '쥐꼬리만 한' 돈을 갈망하는 게 너무 웃겼다. 이 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를 읽다가 이 부분을 보고 '이건 읽어야겠다!'라고 결정 내렸으니까.
이 책이 고마웠던 건 스스로 '개성 있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해 준다는 거였다. 나는 그동안 나의 에너지를 누르는 데에 힘을 쏟았다. 최대한 덤덤한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격렬해져도 된다고, 타올라도 된다고 말해줘서 좋았다. 이 가득한 욕망에 불을 붙이면 대체 어떻게 될까? 두렵고도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개성 있는 사람이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본인도 그럴 테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잘 아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립적 글쓰기란 없다> 챕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나는 정치나 시사 이슈에 관한 글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조심하는 편이다. 편이 갈리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작가라면 적어도 가끔은 ‘참여적 창조성’의 길을 가길 바란다. 당신이 작가로서 머물러야 하는 공적 공간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당신의 목소리를 더하고, 당신이 쥔 펜촉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칙을 옹호하라. 나는 작가인 당신이 공적 공간에서 당신만의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 때로는 생계가, 때로는 우정이, 때로는 사회적 위치가 위험해질지라도 이곳에는 당신이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라. 어떤 종류의 위험이어도 좋다. 작가로서 위험을 감수하는 습관을 갖는 연습을 하라. 일어섰을 때 따라오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라.
내가 무엇을 지지하고 옹호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떨린다. 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참여'하는 건 분명 필요하다고 느낀다. 조심스럽지만 계속 생각해볼 문제다.
<매 순간 불안을 선택하기> 챕터는 놀라웠다. 이 미친 듯한 불안을 잠재우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데 매 순간 불안을 선택하라니. 그런데 글을 쓰려면 그게 맞지 않나 싶고, 불안했던 시간들 때문에 내가 글을 쓰려고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싫은 것들이 실은 삶의 원천이라니. 아이러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글쓰기의 태도를, 그것도 한 가지 태도가 아니라 여러 가지 태도를 돌아보고 갖출 수 있다면 꽤 괜찮은 독서 아닌가. 글쓰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그래서 내가 어제 글을 썼냐면... 노코멘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