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아사 직전의 아이

by 사색의 시간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한다. 명상 속에서 평안한 하루의 시작에 감사했다. 그때 불쑥 두려움이 나타난다.

'이렇게 평탄해도 되는 거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 평안함은 곧 깨지고 말거야.'

내면의 말 한 마디에 호흡이 흐트러진다.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에 짜증이 솟구친다.


안되겠어, 오늘은 이 두려움이라는 녀석과 대면을 해봐야겠어. 나는 결심했다.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 3장에서 했던 과제가 떠올랐다. 감정을 형상화하는 기법이었다.

두려움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눈을 감고 두려움을 불러냈다.


뜻밖에도 두려움은, 아사 직전의 말라 비틀어진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조차 마시지 못해 얼굴이 시커매진 아이였다.

당혹스러웠다. 시도때도 없이 나의 감정을 침범하고 공격하던 녀석이 이토록 조그만 아이였다니.

당연하고 단순한 말이지만, 두려움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무시무시한 괴물이나 끈덕지게 들러붙는 병 같은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 그 자체. 그러니까 두려움이란 가장 나약한 모습을 하고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거였다.


웃겼다. 가장 나약한 아이를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게. 아마 그것이 나의 나약함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거다. 그 아이가 그렇게 말라 비틀어지도록 내버려둔 것이 미안했다. 굶고 굶은 나머지 두려움이 되어버린 그 아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끝장을 보려고 불러냈는데, 나는 두려움에게 처음으로 사과를 건넸다. 두려움아 미안해. 내가 널 내버려두고 있었구나. 두려움이 될 때까지.


지난 연휴 마지막 날 침대에 누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찾아 봤다. 평소에도 종종 보는 프로그램인데, 그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이 달라지는 것만 보고 있네. 내가 달라져야 되는데.'

그 날 본 것 중 [집에 누가 들어오기만 하면 울어대는 아이] 편이 있었다. 바깥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곧잘 어울리는데, 집에서는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극심하게 거부했다. 딱 한 명, 중국집 배달원만 빼고.


그 아이는 몹시 굶주린 아이였다. 중국집 배달원을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이 먹을 것을 가져오는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아이에게, 집이란 생존을 위협받는 우리였고 그곳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침입자였다.


솔루션은 간단했다. 게으른 부모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에게 아침을 챙겨먹이게 했다. 삼시세끼를 충분히 먹이게 했다. 아이가 배고프지 않게 했다. 그러니 아이는 누가 집에 들어와도 방긋 웃었다.


두려움을 다스리는 법도 같다. 잘 먹이면 된다. 그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것을.

과거엔 먹일 수 없었더라도 지금은 먹일 수 있다. 뭘 먹고 싶니? 물어보기가 민망하다. 대답은 당연히 '관심과 사랑'이니까.

내면 아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두려움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또 모르는 일이다. 어떤 아이들이 더 있을지. 그들이 아이인 이유는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로 아이 상태에 멈춰 있다.


그동안 나는 '평안함이 깨지고 말거야'라며 불안해 하는 아이를 향해 '어우 지겨워! 그런 소리 할 거면 방에 들어가!'하고 소리 지르는 부모였던 거다. 아이는 밥도 못 먹고 방에 갇혀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 이제 이 아이를 방에서 불러내 같이 밥도 먹고 잘 지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양육자'가 된 느낌이 든다.


부정적 감정들이 싫어서 시작한 마음 공부인데, 공부를 하면서 '부정적 감정의 효용'을 발견하고 있다. 부정적 감정 속에는 내가 지나쳤던 것들이 전부 들어 있다. 그것을 마주할 때 진짜 내가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 부정적 감정이 꼭 씨앗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까맣고 단단하지만 흙에 심어 양지 바른 곳에서 햇빛을 듬뿍 쬐게 해준다면, 놀랄만큼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말썽꾸러기가 천사가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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