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을 쓸까. 쓰면 또 딴짓하는 건데. 이 생각을 30분 정도 하다가 이럴 거면 후딱 쓰고 집중을 하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제 '아는 정신과 의사'님의 브런치를 읽다가 인상깊은 구절이 있었다.
우리를 옥죄는 건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아니라, 시도하는 것은 반드시 어떤 결실로 맺어져야 한다는 강박이다.
정말 그러하다. 이 글이 무슨 결실이 될지 모르겠지만 쓰고 싶은 대로 써보겠다.
요 며칠 하루 감사 1000번을 카운트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했다. 매일 버튼을 1000번 누르니까 손가락에 통증이 생긴 거다. 고작 이거 갖고 별 일이 있을까 했는데 통증은 엄지 손가락, 검지 손가락, 손목까지 번졌다. 이게 그렇게 무리가 가는 일이었단 말인가요. 그래서 세는 걸 그만뒀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니 확실히 통증이 많이 없어졌다. 약간 길을 잃은 기분이다. 그 시리즈 자체가 그 행위를 기록하는 글이었기 때문에. 그만둬야 하나, 아파도 강행해야 하나. 잘 모르겠다.
어제 독서 기록을 쓰면서 발췌해 놓은 문장을 찾다가 10년 전에 쓰던 블로그를 발굴했다. 그동안 모든 블로그를 폭파시켰건만, 그 블로그만이 살아남았다. 그곳은 주위 사람들에게 거의 알리지 않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건가. 10년 전 글들을 읽는데 기분이 묘했다. 지금 쓰는 일기와 별 다른 것이 없어보였다. '순간순간에 감사하자'라던가 '살아가는데 구질구질한 것들이 많지만 나에겐 글이 있으니 괜찮다'라던가.
좋았던 책, 좋았던 화장품을 목록으로 만들어놓은 게 있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재미있었다. 10년 후의 나를 위해서 지금 나는 어떤 목록을 만들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쓴 책 목록'인데, 10년 후에 그 목록을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른 점도 있긴 하다. 10년 전 나는 조니워커스쿨을 다니며 와인과 칵테일을 공부했고 화장품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첫 마라톤에 참가했고 (10km) 두번째 마라톤에서 기록을 단축했다. 첫 베이스 강습을 들었으며 유홍준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웃긴 게 계절마다 '여름 스커트를 사야한다', '가을 옷을 사야한다' 같은 말이 꼭 적혀 있었다. [저는 옷에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치고는 옷을 너무 열심히 고르고 사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실 오늘도 여름 옷 뭐 살지 쇼핑했단 말이다. 어쩌면 나는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하는 건지도....?
사고 싶은 옷과 가방과 신발을 고르면서 느꼈다. 그런 예쁜 것들을 고르는 건 물건을 사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그것들을 입고 메고 신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싶은 욕망에서 기인한다는 걸.
책 <부자들은 왜 장지갑을 쓸까?>를 읽고 장지갑을 사려고 했다. 장지갑은 꺼내기 어려우니까 카드 꺼내기 편하도록 카드 슬롯이 달린 폰케이스를 샀다. 그런데 폰케이스에 지폐도 들어간다. 핸드폰이 이렇게 컸던가? 지폐가 이렇게 작았던가? 여튼 난 장지갑을 사려고 했는데 폰케이스를 샀다. 폰케이스에 카드와 돈을 넣으니 무지 편하다. 부자들이 장지갑을 쓰는 이유는 돈을 편하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라던데 폰케이스에 꽂혀 있는 지폐는 편할까? 카드지갑에 반 접혀 있을 때보다 편할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점심 때 간 식당에 사람이 매우 많았다. 12시도 안됐는데 입구 바깥으로 줄이 길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식당 분위기가 차분했다. 주인 아주머니가 무척 차분하고 느긋한 태도로 우릴 맞았다. (그렇다고 느린 건 아니다) 우리 테이블을 준비해주시는 동안 마치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에게만 집중해주셨다. 뒤로 끊임없이 손님들이 드나들고 있었는데도. 소리를 지르는 법도, 급하게 구는 법도 없었다. (어떤 식당은 주인이 너무 급하게 행동해서 나까지 초조해진다) 처음 간 곳인데 다 먹고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우릴 잘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웃으며 대해주셨다.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잘 아는 사람처럼.
맛도 맛이지만 그 태도와 분위기가 너무 신기하고 인상적이었다. 바빠도 차분하고 그렇다고 일이 밀리거나 하지도 않고, 분위기가 차분하니까 사람들도 덩달아 차분하게 음식을 음미하게 되었다.
이로써 내가 하고 싶은 수다를 다 떨었으니, 이제는 집중을 할 수 있겠지. 실낱같은 희망을 품어본다. 부디 오늘 밤은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