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려고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젤리슈즈를 미리 사둘 걸. 나는 젖어가는 구두를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 버스를 타도 괜찮을까. 앉을 자리가 없다면 끔찍할 것 같았다. 해야할 것이 있으면 행동에 옮기면 될텐데, 꼭 그것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그것을 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좋지 않은 상황을 가정해본다. 내가 하려는 일들은 자주 그렇게 유보되곤 했다. 오늘 유보된 것은 퇴근이었다.
커피 앤 시가렛. 그 이름을 떠올렸다. 핫하다는 카페 이름. 언젠가 퇴근하고 가봐야지 기억해두고 있었던 이름이었다. 비가 그칠 때까지 아니면 러시아워가 지날 때까지 거기에 있으면 되겠다. 나는 네이버 지도를 켰다.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 카페가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 핫한 카페인가보다.
카페는 굉장히 컸다. 홀과 안쪽 룸으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창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17층에 위치한 이 카페는 근사한 야경으로 유명했다.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시원하게 보이는 바깥 전경이 좋았다.
무주 오미자차를 시키고 구석 자리에 앉았다. 창가는 이미 다 차 있었다. 어차피 비를 피하러 온 거니까 야경에 욕심을 내지 말고 책을 읽자.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사방에서 셔터 소리가 매우 빠르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진을 정말 많이 찍는구나. 찍히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하다가 셔터 소리에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약간 당혹스러웠던 점은, 시간이 지나 어둠이 찾아와도 홀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간간이 내부 조명이 있긴 하지만 책을 읽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혹시 여기 불은 안켜나요? 물으니 안켠다고 했다. 그렇구나. 이곳은 야경을 보러 오는 곳이구나.
그래도 꾸역꾸역 몇 장을 읽었다. 어둡고 셔터소리 가득한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읽은 탓인지 책 내용도 멀쩡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책을 펼쳐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통유리로 보이는 전경들을 멀리서나마 구경했다. 빌딩만 가득한데 사람들은 이런 전경에도 좋음을 느끼는구나. 비일상적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룸 창가로 자리를 옮겼다. 룸은 그나마 조명이 조금 더 있어서 책을 읽을만 했다. 책을 읽다가 아래로 지나다니는 조그만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내가 타야하는 버스도 저 아래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그래. 이런 게 필요했던 걸까. 내가 살던 일상을 멀리서 보는 일.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멀리 떨어져 보는 일. 그래서 사람들이 이 카페에 열광하는 걸까.
만약 다음에 다시 카페에 오게 된다면 그땐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을 거다. 대신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와야겠다.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글을 써보고 싶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는 채로 조그맣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빽빽한 네모들이 만들어내는 빛을 감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