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게, 담백하게, 적당히.

위장이 전하는 메시지

by 사색의 시간

내 위장은 아래 세 가지 경우에 얄짤없이 탈이 난다.

-차가운 것을 먹었을 때

-기름진 것을 먹었을 때

-많이 먹었을 때


첫 번째 것이야 그렇다 치고 어떻게 기름진 것과 많이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적당히 탈 나는 것을 용인하며 살아왔다. 기름진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 앞에서 '흠, 오늘은 탈이 좀 나겠군'하면서도 젓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무리하는 것이 가능했다.


나이가 들면서 무리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진다. 나는 이게 몸이 민감해지는 건 줄 알았는데 누가 그랬다. "아냐, 그건 그냥 늙어서 그런 거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몸이 민감해진 거라고 믿을 테다. 몸이 늙, 아니 민감해졌다는 것은 안 좋은 것들과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울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늘 하는 고민 앞에 위장이 답을 내려준다. 따뜻하게, 담백하게, 적당히. 그렇게만 살면 큰 탈은 없을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고 보면 몸이 다 알려주고 있었다.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나갔고, 오래 글을 쓰면 손목이 나갔다. 싫은 사람을 만나면 속이 거북했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뽀얗게 피어났다. 몸만 잘 들여다봐도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이 반은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나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겪는 것이 피곤하고 귀찮았다.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이런 것을 읽었다.


감각을 돌보고 인식을 닦는 마음 챙김의 수행인 명상이 끝없이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를 능숙하게 타고 나아갈 수 있는 감정의 방편이다. 이 수행으로 우리는 모두 유무형의 존재물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잭 콘필드, <재가자를 위한 팔정도>

마지막 문장이 위안이 되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나는 계속 용기를 내고 있었던 거구나. 매일 하긴 하지만 아직도 루틴으로 정착하지 못한 명상과 스트레칭을, 루틴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크래커를 곁들일까 하다가 한 번 참는다. 따뜻하게, 담백하게, 적당히. 세 가지 중 내가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적당히'인 것 같다. 퇴근하고 운동을 할 건데 벌써부터 무얼 할지 리스트를 짜고 있다. 댓츠 노노.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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