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나쁜 일

by 사색의 시간

민음사 블로그에 '하루에 한 문장'이라는 게시물이 연재된다. 오늘의 문장은 중용이었다.

성실함이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이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들도 이루게 한다. 자기 자신을 이루는 것은 어짊이요, 자기 이외의 것들을 이루게 하는 것은 지혜로움이다. - 중용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어진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어질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니. 너무 어렵고 먼 일로 느껴진다.


매일 아침 감사 일기와 확언을 쓴다. 건강, 글, 돈(정확히 말하면 집)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며 반복된다. 소소한 것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누군가 '에이, 그건 감사나 확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어차피 됐을 일이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럴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태도를 갖는 데에 의미를 둔다.


오늘 아침에 '좋은 일만 있어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려다가 멈칫 했다. 좋은 일만 있는 게 과연 좋은 걸까?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나쁜 일을 통해 조금씩 좋아지며 좋은 일을 통해 조금씩 나빠진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마음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나쁜 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님이 그랬다. '인생이 순탄하면 수행을 안해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인생이 순탄할 때 미리미리 적금을 하듯 수행을 쌓아놓으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뺀질뺀질 놀다가 큰일이 닥치면 그제야 울면서 108배를 한다.


붓다가 라훌라에게 쓴 편지와 더불어 종종 읽는 것이 <보왕삼매론>인데 이 글의 요지 역시 '나쁜 것을 피하지 말라'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고,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고,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한다. 돌아보면 나의 터닝 포인트도 전부 '병'이나 '곤란함'이나 '장애'나 '마'가 닥쳐왔을 때였다.


나쁜 일이 닥치면 괴로운데도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해달라'고 빌지 않는 건 내가 어리석기 때문일까. 여전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나쁜 일만 오기를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기쁠 때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슬플 때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분통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얻은 기쁨인데, 마음껏 기뻐해야지! 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 말을 했던 C가 '모든 것은 지나가니까'라고 답했다. 지나가니까 기쁠 때 더 기뻐해야 되는 거 아냐? 나는 더욱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은 C의 뜻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아주 조금). 감정의 진폭을 줄여 평온함 속에 머무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평온하면 어떻게 글을 쓰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글러먹었나보다) 기뻐할 때 더 기뻐하는 나는 슬플 때 더 슬플 수 밖에 없겠지만. 오늘같이 좋은 날 더 감사하고 더 웃고 더 뛰어놀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나쁜 일에 대비하는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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