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글감을 고른다. 감사 일기를 썼고, 기분이 좋았고......너무 식상하다. 꼭 글감이나 주제를 정하고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물꼬를 트는 뭔가는 필요하다. 그간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쭉 훑어봤다. 그 중 3월 26일에 썼던 '시작하라'가 눈에 들어왔다. <감정 다스리기를 위한 글쓰기>를 처음 읽었을 때다. (이 책 마지막 챕터를 남겨두고 있는데 언제 읽으려는지.)
https://brunch.co.kr/@deepbreathhuha/361
'가슴이 아픈데 그 이유를 몰라서 이 책을 구매했다'고 썼다. 맞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가슴 한 가운데가 쩍하고 갈라지는 것 같은 통증. 누가 안에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 시큰시큰한 통증. 그런 것들이 내 가슴 속에 있었다.
지금은 그 가슴 통증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다. 통증을 찾아내보려고 숨을 들이마신다. 가슴을 크게 부풀려본다. 하지만 가슴 속은 말짱하다. 아프지 않다. 오우. 신기하다.
가슴이 아팠을 때, 나는 왜 그게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감정적 문제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무렵 나는 매일 명상을 하면서 많이 울었고 그래서 쌍커풀이 생겼고 한달만에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채울 만큼 일기도 잔뜩 썼다. 나름 자가치유를 한 걸까. 지금은 좀 살만해서 명상도 일기도 그때보다 훨씬 줄었다. 쌍커풀도 사라졌다.
아픈 것이 나았는데도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아플 때는 괴롭지만 아프지 않으면 그대로 까먹기 때문이었다. 지금 내게는 나아진 것들을 '축하'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이 나아지고 마음이 나아지고 생활이 나아진 것에 대해서. 별 감정 없이 누리고 있었다. 나아지기 전의 처지를 까먹고 지금이 당연한 줄 알며 살았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나아가 뛸 듯이 기뻐하기. 그것이 주어진 것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감정의 에너지임을 안다.
오늘의 나를 축하해야겠다. 가슴이 아프지 않고, 괴로운 것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으며, 출근할 직장이 있는 오늘의 나. 충분히 축하할 만하다.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