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사고의 3요소를 기억해

by 사색의 시간

PT가 꽤 남아있었는데, 양도했다. 거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이렇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이너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조율을 하면 되지 않았을까. 조율보다는 단절을 택하는 나의 모습을 또 이렇게 마주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거야.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랑 문제 없이 즐겁게 운동한다잖아. 그냥 내가 안맞았던 거야.' 혼자 그렇게 결론 내리고 양도했다.


극단적 사고는 왜곡과 과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왜곡과 과장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지레 짐작이다. 현상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이 세 가지 요소로만 내려진 결론은 대개 상대에게도 본인에게도 이롭지 않다. 그럼에도 왜 극단적 사고를 하게 될까? 두려움과 게으름의 습관적 콜라보인 듯 하다. 어제는 여러모로 극단적인 하루였다.


예전에 출간기획서를 여러 출판사에 보낸 적이 있다. 출판사에서 메일이 올 때마다 '거절 메일일거야' 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메일함에 새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만 울려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답장이 올 때마다 우울해하면서 '이럴 거면 메일은 왜 보낸거야?' 스스로에게 의아했다.


거절일 거란 확신에 차 있던 나는 거절이 아닌 메일도 거절로 읽었다. 심지어 내용을 다 확인했는데도 거절인 줄 알았다. 이미 내 머릿 속에 온통 거절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기분이 괜찮아진 후 다시 메일을 읽었을 때 비로소 그 메일의 실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 현상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일단 마음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극단적 사고 전문가로서 느린 호흡과 거리두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트레이너에게서 불편함을 느꼈을 때 나는 호흡도 거리두기도 잊고 부정적인 정서에 빠진 채 결정을 내렸을 거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다신 보지 않겠어!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극단적 사고는 당사자에게도 큰 혼란을 초래한다. 방금까지 저 멀리 있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면, 어떻게 된거지? 싶다. 본인의 낙차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고 조급해져서 '왜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이렇게 되기 쉽다)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와 유튜브를 보는데 부자 관련 영상이 피드에 떴다. 그걸 보고서는 또 '이건 사회구조상 부자가 되기가 점점 어렵다고 하는 영상이잖아!' 하면서 슬퍼했다. (너무 슬퍼서 영상을 볼 수 없었으므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영상을 봤는데, 그냥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대처를 잘하자는 지극히 분석적인 내용이었다.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 나만의 지레짐작이었던 거다. 머쓱...


지레짐작과 왜곡과 과장. 잊고 있었던 나의 전문분야가 닥쳐왔다. 이 타이밍에 이것들이 닥쳐온 건, 이제 이것들을 해결할 차례라는 뜻이겠지. 해결할 것이 많아서 좋다. 인생이 심심할 일은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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