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6시에 눈을 떴습니다. 아. 망했다. 꿀꿀한 생각들이 금세 머릿 속을 가득채웠습니다. 조금 누워 있다가 '지금이라도 가보자'하며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옷 갈아입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 레깅스를 입고 나왔어요. 출근길 레깅스. 이 또한 예전에 꿈꾸었던 로망이었죠.
결과적으로, 요가 수업에 늦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30분 정도 일찍 움직이는 습관이 있어서 일찍 나왔던 것이지 그 시간을 넘겼다고 해서 늦은 건 아니더라고요. 새삼 '스스로에게 빡센 룰을 적용하며 살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6시 넘어서 나와도 충분하구만 그걸 그렇게 타박을 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게 충분히 관대하자던 다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구석구석 근육을 사용한 날은 근육의 떨림이 느껴져요. 몸 속 깊은 곳에서 지잉-하는 진동이 일어납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도 맞긴 하지만) 몸이 깨어나는 것에 더 가깝다고 느꼈어요. '에너지의 진동을 높인다'는 말은 추상적이거나 신비로운 표현이 아니라 몸에서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아서 느껴지지 않는 것 뿐. 우리 몸 속에 얼마나 많은 떨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오장육부에서, 혈관 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제 만난 무지개 장미
불안한 떨림은 다독이고 기분 좋은 떨림은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일이 잘 되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심장에 귀를 기울입니다. 박동이 가빠지면 신경쓰던 일을 잠시 멈추고 박동이 자기 리듬을 찾을 수 있도록 심호흡을 합니다. 심장이 늘 편안하도록 돌보는 연습이예요. 그동안 늘 긴장 속에서 콩닥콩닥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살았으니까요. 심호흡을 하며 심장이 느끼는 느긋함은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오늘은 소설가 천선란님이 쓰신 글이 제 가슴 깊이 박혔습니다.
나는 정말로 소설을 쓰는 게 무섭다. 소설을 쓰는 게 너무 어렵고 즐겁다. 무섭고 설렌다. 언제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언제까지나 하고 싶다. 나는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쓴다는 행위가 무엇을 내포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세계에 단 한 명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딱 저의 심정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경우,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한 글을 써냈을 경우', 저는 낙심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써야 됐는데, 저 사람이 먼저 썼네. 그럼 나는 이제 뭘 쓰지? 쓸게 없네? 그것이 마치 내 것이기라도 했다는 듯 말이죠. 지금은 마음이 놓여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서. 그들의 글에서 힘을 얻고, 나는 또 내 식대로 뭔가를 써나가야겠죠.
저는 저를 숨기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요. 내가 뭘 먹는지, 어딜 가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치 않았어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혼자서 숨기느라 전전긍긍하며 살았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혼자 숨어다니며 살지? 의문이 들더군요. 아마 그건 내가 내 모습을 오롯이 대면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나에게 먼저 보여주면, 편해질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득 알 것 같아요.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가장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