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김민정 시인의 수업이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강의였던 것이 코로나로 인해 ZOOM 강의로 대체되어 아쉬웠지만, 온라인 강의도 나름대로 재미나던 걸요. 시인께서 아주 시원시원하면서도 그 시원함의 폭이 과도하지 않고 아름다워서 즐거운 강의였어요. "감각을 알려면 돈을 많이 써봐야 해요."라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듭니다.
김민정 시인은 최승자 시인의 시를 읽다 '못 잊어 개새끼'라는 구절을 보고 시를 쓰기 시작했대요. 그냥 '못 잊어'도 아니고 그냥 '개새끼'도 아닌, 못 잊어 개새끼의 그 절묘한 뉘앙스. 무엇보다 '아! 개새끼라고 써도 되는구나!' 하는 감각이 김민정 시인에게 자유와 통쾌감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도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병신이라고 써도 되는구나. 섹스라고 써도 되는구나. 그런 것들에 묘한 안도와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 '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끌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라'는 말씀도 주셨어요. 내가 이게 좋다. 근데 왜 좋지? 그 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는 겁니다. 질문을 통해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지요. 김민정 시인은 육상과 발레 중 육상을 택했고, 육상 중에서도 장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단거리를 택했다고 해요. 소설을 전공하였으나 역시 장거리는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시를 택했다고 합니다. 스크랩북을 만들기도 한대요. 자신이 이걸 왜 오려 붙였는지 모르지만, 그 오려 붙임 자체에 이미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거죠. 그렇게 만든 스크랩북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고, 보고 있으면 글을 쓰고 싶어 진다고 해요. 수업을 들으며 최근 제가 구매한 것들, 즐겨 듣는 노래들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향 : 향기를 위해서라기보다 이것을 태우는 행위를 위해서 샀어요. 태움으로써 무언가를 날려버림과 동시에 불러들이는 행위 말이에요.
-원석 : 원석 팔찌를 수정으로 정화하려고 수정 원석들을 많이 샀어요.
-화분 : 죽일까 봐 생명체를 집에 들이는 걸 조심스러워했는데 스위트바질이 몇 달이 지나도록 무럭무럭 잘 자라주고 있어서 용기를 얻어 화분을 몇 개 더 샀어요.
이렇게 보니 기존의 에너지를 정리하고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저의 욕구가 보이는 듯도 하네요. (갖다 붙이기)
요즘 즐겨 듣는 노래는 '눈누난나'와 'sucker'에요. 눈누난나는 춤이 너무 신나고 멋있고 제시 의상 화장 전부 찰떡이고 라이브 짱이라서 계속 듣게 되고, sucker는 I am sucker for you 발음이 너무 귀여워요. 처음엔 sucker... sucker라고? 이걸 가사에 써도 돼? 역시 미쿡인가? 했는데 찾아보니 (저 같은) 몇몇의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뜻과 전혀 다른 뜻이라고 해요. I am sucker for you는 '난 너에게 푹 빠졌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suck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결과라고 뜨냐고요. 네이버가 잘못했네...
김민정 시인은 '내 시가 불편한 거 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시들을 보니 불편한 시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저 또한 제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추적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요, 절묘하게 모여지는 리스트를 보면서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이런 취향을 가지고도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제 자신에게 격려와 응원을 듬뿍 주려고요.
수업이 끝나고 시를 써보았습니다. 쓰면서 되게 재밌고 좋았어요. '어? 시는 설명을 안 해도 되네?' 하는 자유로움이 있었어요. 김민정 시인이 만든다는 스크랩북처럼, 감각의 이미지들을 떠오르는 데로 엮다 보니 한 편의 시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아래는 제가 어제 쓴 시입니다.
암수 暗水
어둠으로 된 빛
귀를 갖다 대면
파도 소리가 났다
맡을수록 서러운 냄새가 풍겨와
자꾸만 코를 킁킁
콧잔등에 잡히는 주름마저 서러워
'무슨 맛이 나?'
'아무 맛도 안 나.'
그러면서도 너는 왜 군말 없이 받아마시는지
나는 왜 자꾸 너에게
아무리 만져도 알 수 없는 촉감
주물거리는 손가락 사이로 걸려든 건
네가 아니었다
다 쓰고 나서 함께 수업 듣는 시인들과 감상을 나누는 시간도 좋았어요. 서로의 이야기 속에서 작자 본인도 몰랐던 숨은 상징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피드백을 통해 시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소설 <리진>에서 제 가슴에 가장 크게 부딪쳐온 장면은 주인공 리진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모파상이 <여자의 일생>을 낭독하는 장면이었어요. 그걸 읽으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도 죽기 전에 내 작품을 낭독할 수 있을까? 하면서요. 지금 생각하니 너무 찌질한데... 1년 전의 저는 그랬네요.
이번 시 수업 마지막에 낭독회가 있대요. 직접 쓴 시를 읽는 거죠. 1년 전에 낭독회 할 수 있을까 울던 제가 이렇게 낭독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오면 저도 제 시를 읽게 되겠죠. 그때를 기대하며 재밌게 자유롭게 써봐야겠어요. 시를 쓸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민정 시인의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중 한 편을 남깁니다.
나는 뒤끝 짱있음
-곡두 6
김민정
모닝콜은 있고 굿모닝은 없음
굿모닝은 있고 기지개는 없음
기지개는 있고 휘파람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개똥은 있고 개는 없음
개는 있고 개똥 주인은 없음
개똥 주인은 있고 개똥 치운 주민은 없음
개똥 치운 주민은 있고 개똥치운 주민에게 사과하는 개똥 주인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출근은 있고 설렘은 없음
설렘은 있고 잔고는 없음
잔고는 있고 이자는 없음
이자는 있고 임자는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애무는 있고 섹스는 없음
섹스는 있고 삽입은 없음
삽입은 있고 느낌은 없음
느낌은 있고 사랑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소등은 있고 퇴근은 없음
퇴근은 있고 수면은 없음
수면은 있고 숙면은 없음
숙면은 있고 단꿈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환각은 있고 환상은 없음
환상은 있고 기대는 없음
기대는 있고 포옹은 없음
포옹은 있고 당신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나가는 상여보며 밥 비비는 심청은 있고 들기름은 없음
들기름은 있고 고소함은 없음
고소함은 있고 방앗간은 없음
방앗간은 있고 떡 주무르는 사람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떡 주무르듯 뇌병변의 손자를 마사지하는 할머니가 있고 똥오줌 가리는 손자는 없음
똥오줌 가리는 손자는 있고 싸가지 있는 손녀는 없음
싸가지 있는 손녀는 있고 용돈 오지게 주는 손녀는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구두 밑창에 들러붙은 개똥 떼면서 개씨발거리는 내가 있고 약은 없음
약은 있고 물은 없음
물은 있고 불은 없음
불은 있고 내일은 없음
나는 뒤끝 짱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