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잘해요

by 사색의 시간

11. 가장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가장 자신 없는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질문을 받고 한참이나 생각했는데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비교 대상이 '타인'이었거든요. 내가 무얼 잘하든 나보다 더 잘하는 타인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늘 이런 식으로 사고가 작동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잘하는 게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구나. 알 수 있었어요.


타인은 저 멀리 보내버리고 나만 들여다봤을 때 나는 무얼 잘할까? '가장'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뭘까? 그건 '시작'이었어요. 시작을 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시작만 한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내면의 목소리가 열심히 태클을 겁니다. 끄덕끄덕.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내 삶을 돌아보면, 무수한 시작으로 채워져 있네요. 어쩔 수 없이 나는 시작을 잘한다고 말해야겠습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으면 일단 시작해요. 한 번 하고 끝내더라도요. 한 번 하고 끝내면 미련이 없다는 뜻이니 더이상 내 마음을 거기 두지 않아도 되잖아요. 호기심이 생기면 그걸 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아요. 바로 해봅니다. 이 셀프인터뷰도 보자마자 신청한 거고요.


헬스를 시작하고, 중국어를 시작하고, 새로운 춤을 시작하는 데 지체하지 않아요 (물론 금방 그만두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요). 해보고 재미 없으면 안합니다. 하나하나 퀘스트를 깨가는 것처럼 이것저것 시도해봐요. 저는 쭉 이렇게 살아서 느끼지 못했는데,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시작에 대한 강박이 없다고.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는데 오랜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친구를 보면...이게 나의 특성이 될 수도 있으려나 싶어요. 종종 '용기가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전혀 아니고요, 오히려 안하고 넘어가는 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저지르는 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 없는 건 숫자와 관련된 것. 호주에서 살 때도 환율이 감이 안 오더라고요. 계산은 할 수 있지만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수리적으로 와닿지 않는달까.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도 제가 그게 무슨 느낌인지 감을 못잡아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부자가 되려고요. 감이 확실이 잡히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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