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의 노인과 바다
이자람을 처음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것은 소리꾼 이자람이 아니라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이자람이었다. '비가 축축'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12년 전 노래니까 이자람을 좋아한지도 12년이나 된 셈이다. 비가 축축 노래처럼 오늘도 비가 축축 왔다.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이자람 님이 소리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판소리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노인과 바다는 '노인이 낚시 갔다가 탈탈 털리는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자람 님의 판소리로 해석된 노인과 바다는 참 눈물 났다. 배를 띄웠다 다시 돌아오는 그 여정 속에 모든 인간사가 담겨있는 것만 같았다. 대본을 잘 썼다고 느꼈던 건 중간중간 노인과 바다의 맥락에 맞게 이자람 님 본인의 이야기, 본인의 속내가 들어 있는 대목이었다.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이 힘든 것을 왜 계속할까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나타나기는 할까
노인이 청새치를 보면서 '차라리 너를 잡지 말 것을'이라고 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청새치를 놓아주지는 않는 것 또한 인간의 마음 아니겠나.
구성진 소리 자체로도 너무 좋았고, 노인과 바다라는 이야기도 좋았다. 훗날 또 이자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그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공연을 보고 집에 돌아와선 한바탕 청소를 했다. 절대 안 할 것 같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마음을 잡고 청소를 한다. 깨끗해진 방이 꼭 마법 같다. 그리고 부랴부랴 책을 좀 읽었다. <무작정 소설 쓰기? 윤곽 잡고 소설 쓰기!>라는 책이었는데,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떻게 윤곽을 짜는 거냐고! 이런 책 따위 아무리 읽어봤자 윤곽을 짤 수 없잖아!' 하면서 마구 짜증을 냈다. 그 책에 이미 윤곽을 어떻게 짜는지 친절히 다 나와 있는데도 내 눈이 그걸 스루 했으면서. 괜히 짜증이야. 그냥 윤곽을 짜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귀찮으니까.
소설 작법서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인물 인터뷰를 하라는 것. 그러나 나는 하지 않지. 귀찮으니까.
책을 읽다가 오늘의 기록을 아직 쓰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 브런치에 들어왔다. 사실 이미 쓴 줄 알았다. 비록 소설의 윤곽을 짜지 못해 짜증이나 부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브런치 글 한 편은 썼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줘야겠다. 잘했어. 네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그럼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