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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쓰다

by 사색의 시간

얼마 전 내가 쓴 글에 대해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딥브레스씨는 그 사람들을 정말 이해하고 싶으신가봐요."

이해'하고' 싶었나? 그 피드백을 들으며 나는 오히려

이해'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고 또 보는 이유도 아마 그 아이들의 모습들과 오은영 박사의 코멘트 속에서

뭔가 '나를 이해할 만한' 것을 찾아내기 위함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가족들에게 나의 감정이 받아들여진 기억이 없다.

울면 '왜 울어!'하고 오히려 윽박이 날아왔었다.

의외로 감정을 교류하지 않고서도 가족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아마도 나는 나의 감정을 알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지.

나는 내 글이 한없이 건조할 줄만 알았는데, 생각외로 돌아오는 피드백은

'심리묘사가 섬세하다'는 평이었다.

오잉. 심리묘사라니. 내가 뭘 묘사했더라.


뭔지도 모르는 채

그런 식으로

나는 내 감정을 그려가고 있었나보다.

채 이해받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이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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