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좋아서

by 사색의 시간


호주에 간다 하니 누군가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주인공의 처지가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직장 생활을 몇 년 정도 해봤다는 점이 그랬고, 물려 받을 것도 없이 살다 타국으로 건너 간다는 점이 그랬다. 그럼에도 공감은 할 수 없었다. 나는 한국이 좋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다. 땅이 좁긴 해도 사람들은 따뜻하고 부지런하다. 쇠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뜨끈한 바닥에 몸을 지질 수 있는 것도 좋다. 서점이나 공연장 한 구석에 앉아 한국어로 된 작품의 아룸다움을 음미하는 시간이면 행복해진다. 택배와 인터넷과 공공 기관의 일처리 속도는 놀랍도록 신속하다. 무엇보다 매콤한 떡볶이에 청하 한 병이면 바랄 것이 없다. 한국에서 누리는 소소한 일상이 나에게는 무척 소중했다.


한국을 잠시 뜨는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이 좋아서, 다시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 잘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말인 즉슨 지금 내가 한국에서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한때는 나도 '내가 한국 사회랑 잘 맞지 않는가보다'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살다보니 꼭 한국이 아니라 어딜 가든 맞지 않는 구석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 얻지 못했던 기회를 외국에 나가서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외국을 유토피아로 여기지도 않는다.


없는 돈으로 비행기 표를 사고, 숙소를 예약해야 한다. 한국에서 다 정리했던 생필품들을 그곳에 가서 다시 사야 한다. 고생스럽고 귀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왜 가냐고 묻는다면, 나라는 인간이 거기서 지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라도 대답할 것이다. 거기서 잘 지내고 돌아온다면 여기서도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해서. 일종의 생존력 테스트랄까.


멀리 떠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여전히 변함 없는 나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여기서 잘 살아낼 힘을 그곳에서 기르고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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