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날 시간이 오고 있다. 준비할 게 있을 것 같은데 그저 넋을 놓고 시간을 보낸다. 영어 공부도 손 놓은 지 오래다. 짐도 싸지 않았다. 호주로 떠난다니. 이제야 겁이 난다. 내가 왜 거길 간다 그랬을까. 어서 직장을 구해서 어떻게든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할 것을. 뭣하러 뻔하게 고생할 곳으로 간다 그랬던 걸까. 그것도 서른이 넘어서. 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그렇다고 취소할 생각은 없었다. 기다려온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에.
그제야 캐리어를 주문했다. 캐리어 하나에 모든 짐을 꾸려야 한다. 여행이 아니라 주거 공간을 옮기는 거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짐을 싸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빼기의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스스로가 미덥지 못했다. 넣어야 할 건 죄다 빼고 빼야 할 것만 꽉꽉 채워 넣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숟가락과 젓가락이었다. 은색 수저 세트를 꽉 쥔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어디 가서든 굶어죽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로군. 중국이나 일본에 여행 갔을 때 기억이 났다. 식당에 들어가면 나무 혹은 플라스틱으로 된 젓가락이 통 안에 가득 꽂혀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이 일회용인 줄 알았다. 일회용치고 너무 잘 만든 것 아닌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일회용이 아니었다.
쇠로 된 숟가락과 젓가락은 한국에서만 쓰는 걸까. 외국을 여행할 때면 나의 스텐리스 수저가 그리웠다.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식기로 입 안에 밥을 떠넣는 일은 알 수 없는 상실감을 일으켰다. 깊은 상실감에 빠진 나머지 식기를 내려놓은 채 손으로 밥을 집어먹은 적도 있었다. 음식이 맛있으면 됐지 뭘 수저까지 따니자.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내 손과 혀는 오래된 감각을 그리워했나보다. 단단한 그립감과 무게감이 아른거렸다.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와서 쇠젓가락을 쥐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던 기억이 났다.
쇠로 된 식기로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예술이나 무도를 익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일상이 내 몸 깊숙히 베어버렸다는 것을 외국에 나가서야 깨달았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자란 땅의 역사와 문화가 이미 내 몸 속에 다 들어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쓰는 수저를 무척 아끼게 되었다.
호주 사람들은 무엇을 쥐고 식사를 할까. 영화를 보면 쇠로 된 스푼과 포크가 나오긴 하던데. 나는 미지의 식기들을 상상하며 내 수저를 캐리어 안쪽에 잘 챙겨두었다. 다른 예쁜 것으로 새로 장만해갈까도 싶었지만 이미 이것들이 손에 그리고 입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타국에서 지내는 것이 고되다 해도 이것들을 단단히 쥐고 있으면 어떻게 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캐리어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수저를 보고 있으려니 좀 웃겼다. 왜인지 든든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