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도착했다. 어딜 가서 뭘 해야겠다는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기분 또한 오락가락이었다. 특히 떠나기 직전에는 짐이 무거워서 매우 짜증이 났다. 콴타스 항공 수화물 규정이 30kg인데 딱 30kg를 찍었다. 이 정도면 최소라고 생각하고 싼 건데 맥시멈이었다니. 수화물 무게 조차 재보지 않고 탑승을 하려던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다. 뭐가 이렇게 막무가내인지. 짐도 다 버려버리고 싶었다. 버리면 또 시드니에 도착해서 짜증을 낼 것 같아 꾸역꾸역 들고 왔지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공항까지 가는 동안 주위에서 지나가던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역시 한국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나니 비행이 끝났다. 열 시간을 어떻게 가나 했는데 내심 아쉽기까지 했다. 빠르게 이동하는 탈 것 안에 가만히 몸을 부리고 있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인지도 몰랐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지만 기차나 비행기 안에 가만히 있으면 그 순간에도 어디론가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된다. 그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즐겨도 된다는 느낌이 든다. 자책하지 않게 된다. 덕분에 긴 비행 시간도 나에게는 일종의 휴식으로 다가왔다.
시드니 땅을 밟자마자 낯선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잠시 머리가 정지되었다. 큰일 났다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이 먼 곳으로 오다니.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어느 동네 같기도 했다. 짐은 호스텔에 던져놓고 일단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은 계속 가라앉았지만, 기분이나 생각은 대체로 나의 편이 아니어서 그것들에 끌려다니느니 움직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핸드폰을 개통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러 갔다.
도착하자마자 핸드폰과 은행계좌를 개통하다니 대단하구나. 은행 직원이 칭찬을 해줬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부지런해진 것 같았다.
"영어로 일을 해야 하는 게 두려워요."
"괜찮은데? 네가 하는 말 다 알아듣겠는데?"
직원은 나의 긴장을 풀어줬다. 내가 고객인 세계는 아직 스윗하구나. 직원과의 대화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호주 은행 계좌로 송금해서 쓰려고 돈을 거의 챙겨오지 않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 은행들이 해외 아이피라면서 이체를 안 시켜준다. 호주 인터넷은 느리게만 느껴진다. 그걸 붙잡고 있느라 반나절이 통째로 날아갔다. 돈 좀 챙겨올 걸! 해결하지 못한 채 저녁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