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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y 19. 2016

88세 미수(米壽) 알바생, 당신은 나의 멘토  

맥도날드 최고령 알바생 임갑지 할아버지에게 듣는 '행복하게 사는 법'

사람들이 마시고 간 컵을 정리하고 주변을 닦는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 임갑지 할아버지


 교복을 입은 청소년 무리들이 늦은 저녁 시간 한 패스트푸드점 의자를 '점령'했다. 시끄럽게 떠들며 의자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리를 올린다. 바닥에 가래침도 뱉었다. 심지어 실내에서 담배까지 꺼내 물자 점장이 급히 달려가 만류하려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빰을 맞았다. 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때 한 노인이 나타났다. 울고 있는 점장을 달래고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그들이 침과 쓰레기 등으로 어질러놓은 바닥을 말없이 손 수 닦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다리를 의자와 책상에 함부로 올려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들, 다리가 많이 아픈가 보구나? 참 힘들겠다, 고생이 많네." 머쓱해진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죄송하다'고 꾸벅, 인사를 한 채 사라졌다.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몇 년 전 맥도날드 미아사거리 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사건을 지혜롭게 수습한 해결사는 '국내 최고령 알바생'인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 임갑지 씨(88)다. 올해로 맥도날드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한 지 13년이 되는 '장수'알바생이기도 하다. 


 그는 주 3회, 아침 9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4시간 동안 근무한다. 13년 동안 단 한 번도 결근과 지각을 한 적이 없다. 의자와 책상을 가지런히 맞추고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놓을 때 사용되는 트레이(쟁반)를 깨끗이 씻고 정리한다. 컵 정리도 그의 몫이다. 잠깐 짬이 날 때는 미아사거리 역 앞과 가게 근처에 있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도 모조리 줍는다. 


"나중에 비가 오거나 하면 결국 다 우리 가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잖아요. 미리미리 치워둬야지. 가만히 있을 짬이 없어(웃음)"

돈보다는 '일 하고 싶어'
  6.25 참전 용사인 그는 농협에서 정년퇴임을 한 후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다가 70대 중순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로 지원했다. "돈도 돈이지만,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내가 정년 퇴임을 55세였던 83년도에 했는데 그게 벌써 34년이 됐어요. 퇴임 후 내 가게도 10년 정도 했고 , 이후에도 계속 일을 하고 싶어서 이력서를 냈지만 다 떨어졌어요. 그때 맥도날드 시니어 크루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맥도날드는 2000년대 초반부터 55세 이상이 대상인 '시니어 크루'를 채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 씨 외에도 총 320명의 시니어 크루들이 있다. 임 씨는 국내 최고령자이지만, 싱가포르에는 92세 여성 시니어 크루도 맥도날드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첫 월급의 일부를 자신이 활동하는 로터리 클럽에서 진행했던' 소아마비 환자 돕기 캠페인'에 지원했다. 요즘도 매달 일정액을 로터리클럽 활동을 위해 기부한다. 가족 생일 케이크를 직접 사고, 아내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교통카드도 매달 충전해준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의미 있게 쓰려고 노력 중이다. 

하루하루 움직인 덕분에 건강 유지해 행복.. 직원들 모두 출근 기다리는 '큰 형님'
 워낙 고령이라 근무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가족들도 동료들도 걱정이 많았지만 그야말로 '기우'였다. 임 씨는 "처음에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을 반대하였던 아들도 내가 열심히 움직인 덕에 이 나이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 아니냐고 설득하니 수긍하더라"고 말했다. 


 임씨는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또 움직인 덕분에 나이보다 10살 이상 어려 보이지 않냐며 '자랑' 도 했다.  임 씨와 함께 일하는 맥도날드 미아사거리점 이관형 점장은 "처음에는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러웠는데, 늘 정정하고 늦으시는 법도 없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 하는 모습이 다른 크루들에게 모범과 활력이 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직원들은 지점의 '큰 어르신'인 임씨의 출근을 내심 기다린다. 임 씨가 출근하는 날에는 유독 미아사거리점이 깨끗해서 라고 한다. 그와 함께 하는 점심식사는 곧 '인생 상담' 시간이 되기도 한다는 게 직원들의 귀띔이다. 70대 인턴이 30대 젊은 사장과 함께 일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아 인기를 모았던 영화 '인턴'의 실사판이다. 늘 긍정걱인 임 씨를 따르는 젊은 직원들도 많다. 

지금 자리에서 최선 다 하면 세상이 인정해줘
 오랫동안 삶의 무게를 견뎌온 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무게에 걸맞게 깊었고, 또 담백한 답변이었다. 
 "현재를 인정하면 돼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면 돼요. 노인들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하고 싶은 일'만 찾다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놓쳐요.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이제 과거의 창창했던 젊은이도, 군인도 아니죠. 과거를 생각하며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내 삶이 불행해요. 현재에 최선을 다 하면 사람들이 나의 가치를 발견해 줍니다. 그리고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어요."

 after interview..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한동안 덥다 갑작스레 찾아온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찾아가 진행한 인터뷰였다. 
 노인의 지혜는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는데, 임 할아버지와의 시간은 돈으로도 절대, 바꾸지 못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라는 말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다짐도. 
 할아버지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트레이와 컵이 모여있는 곳을 계속 쳐다보셨다. 아마도 자기가 해 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해야 하는 것이 미안했으리라. 인터뷰가 끝나자 내 손을 꼭 잡으며,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렇게 인연이 돼 참 기쁘다. 하시는 그 말이 뭉클했다. 
 '나는 지금 더 이상 군인이 아니지만'이라면서도, 그 시절 사진을 가지고 와 하나하나 설명하며 보여주셨더랬다. 과거를 추억하는 그의 모습이, 현재를 받아들이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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