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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y 23. 2016

내직장은 '꿈을 이루는 학교'..한석원 스시조 수석셰프

22년동안 한 직장 고수하며 '최고의 맛' 선보이는 '행복한' 주방장

 

수타면을 만들어 내는 한석원 셰프(=사진 제공 웨스틴 조선 호텔)


패션 디자이너 꿈 접고 칼을 손에 든 한 청년..


 26년 전인 1990년, 패션을 공부하겠다는 꿈을 안고 일본에 찾아간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일본 내 최고의 패션스쿨 '도쿄 문화 복장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결심한 일본행 이었지만, 결국 그에게 돌아온 건 낙방 소식 뿐이었다. 

 실패의 쓴맛을 본 스물다섯의 젊은이는 그대로 주저앉는 대신 일단 학비를 벌기 위해 도쿄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레스토랑 사장 후쿠이 씨는 작달하지만 손이 야무진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눈여겨 보았다. 그는 이 학생에게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감각과 빠른 두뇌회전이 필요한데 너는 그 두 가지를 갖췄다. 패션보다는 음식을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이후 그는 멋진 옷을 디자인 하는 대신 요리복과 앞치마를 입고 칼을 손에 들었다. 패션 스쿨을 접은 대신 그는 일본 내 요리 전문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버렸지만, 그 대신 그는 국내 최고의 일식 셰프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의 수석 셰프인 '한석원 셰프'의 이야기다. 



'내 이름 차린' 레스토랑 대신 '학교'같은 직장에서 신메뉴 개발하는 게 즐거워 


 많은 셰프들의 꿈은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가진 '오너셰프'이다. 하지만 그는 22년동안 한 직장을 고수하고 있다. 혹시 오너셰프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의 직장이 마지 '학교'같다고 돌려 대답했다. 

 

 내 식당을 갖고 있는것과 아닌 것은 각각 장단이 있어요. 내가 식당을 갖고 있다면 아무래도 최고급 재료로 실험하며 매년 수십가지 이상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는 어렵겠죠. 반면 호텔 내의 레스토랑은 셰프들에게는 '학교'와 같아요. 회사의 지원 아래 다양한 요리도 개발해 보고 또 새로운 요리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도 있고요  

 한 셰프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만들어 하나 둘 씩 떠나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학생들과 함께 이 '학교'를 꾸려간다. 이미 그는 수많은 '스시조'군단 들의 선생님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들고 남 속에서도 이 레스토랑이 한결같이 최고의 맛을 내게 해 주는 버팀목 이기도 하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매년 약 140개의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 고객에게 내 놓는다. 20년 넘게 스시조와 함께한 조리장 한석원 셰프가 동료와 함께 개발한 메뉴만도 수천여 종이 넘어간다. 


한석원 셰프

 

다양한 식재료를 일식 요리로 탈바꿈 시키는 게 내 역할


 한 셰프가 '맛있는 요리'를 선보이는 비결은 '식재료 장르의 파괴'다. 30년 가까이 일식 요리사로 지내온 한 셰프지만, 사용하는 재료만 보면 전혀 '일식'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가 기자에게 선보였던 새우요리에는 마스카포네 치즈와 된장을 섞은 소스가 들어갔다. 여기에 캐비어를 살짝 곁들여 풍미를 더했다. 스시조에서 맛본 음식이 아니라면 전혀 일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한 셰프는 "마스카포네 치즈와 된장히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둘을 섞으면 고소하고 부드러운 소스가 나온다"며 "일식이라고 반드시 일식 재료만 사용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식의 기본 메뉴인 계란 찜에도 ‘트러플'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서양 재료인 송로버섯을 사용한다. 한 셰프는 "보편적인 계란 찜은 계란 안에 은행과 밤, 삶은 닭고기를 넣는다"며 "하지만 트러플을 토핑으로 사용하면 새로운 계란찜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송로버섯을 돌솥밥을 지을 때도 활용한다.

 서양 레스토랑에서 즐겨 먹는 스테이크 역시 맛술과 가다랭이포, 간장등을 활용해 만든 소스가 가미되면 훌륭한 일식이 된다. 한 셰프는 "보통 출장을 가면 주로 일식 레스토랑에 가곤 하지만 요리 연구를 위해 프렌치와 이탈리안도 레스토랑도  종종 방문해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다양한 식재료를 일식 요리로 재탄생 시키는 게 내 역할 아니겠냐"며 웃었다.

 

 집에서는 일식 요리 보다 파스타 즐기는 '따뜻한 남편'..모범생 보다는 도전가 좋아


 실제 그는 집에서는 주로 파스타를 요리해 먹는다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는 '알리오 올리오'(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곁들인 스파게티)다. 하지만 이 요리 역시 그는 '맛있게 먹기 위해' 손을 좀 봤다. 한셰프는 메로 등의 흰살 생선, 버터 등을 추가해 그만의 '팁(tip)'이 담긴 파스타를 만들어 아내와 즐긴다.


  최고 일식 셰프인 그에게 집에서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여름 요리를 추천받았다. 그는 냉 우동의 일종인 '부카케 우동'을 소개했다. 한 셰프는 "우동을 생각할 때 따뜻한 국물 우동만 떠올리지만 사실 부카케 우동은 맛도 좋고 만들기도 쉬운 여름 별미"라며 "익힌 후 차게 한 우동 면발에 쯔유(일본식 간장)를 비벼먹으면 탱탱한 면을 느낄 수 있어 맛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텐카츠(튀김 조각)만 더하면 더 맛있는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스시조'의 셰프인 그에게 스시를 맛있게 먹는 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스시는 사케같은 술과 먹으면 맛이 크게 떨어진다"고 충고했다. 대신 함께 나오는 녹차(오차·お茶)로 입을 헹궈가며 먹을 것을 권했다. 한 세프는 "스시는 생선을 따뜻한 밥 위에 올려먹는 음식인 만큼, 다른 사시미(회)에 비해 비려지기 쉽다"며 "녹차로 비린내를 없애며 먹어야 먼저 먹었던 스시가 다음에 나온 스시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간장의 온도도 스시를 맛있게 먹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나치게 차가우면 스시의 맛이 떨어질 수 있어, 스시조는 꼭 상온의 간장을 쓴다. 


 한 셰프는 "정석을 지키는 성실한 모범생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꾸밀 줄도 알고,약간 반항을 할 줄 아는 껄렁껄렁함도 있어야 되는 것 같다"며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성실함과 인성이 필수지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볼 줄 아는 감각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fter interview..

 '쿡방', '먹방'이 난무하는 시대였다. 많은 셰프들이 자신을 드러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이 때, 꾸준히 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한석원 셰프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와닿았다. 새로운 '자리'를 탐하기 보다는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그가 어떤 오너셰프보다도 멋있었다. 자신의 직장을 학교라고 표현할 수 있는 삶의 방식도 닮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어 신문사에 들어간 나 역시, 매일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이놈의 직장'에 대한 불만을 달고 사는가.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영역을 살피고, 또 나름의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내 직장도 충분히 '학교'라고 불리울 만 할텐데. 사실 한 셰프를 만나 이렇게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이 신문사라는 학교 덕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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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에는 제가 과거 진행했던, 기억에 남는 인터뷰들을 담아내려 합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내용을 일부 첨언하고 시점에 맞춰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인터뷰 후에 느꼈던 단상들도 함께 곁들입니다.  당시 신문에 들어갔던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은 분들은  기사 원문 을 클릭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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