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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n 29. 2016

공무원 꿈 접고 '한복 전도사'된 20대 사장님

 올해 사업 10년 차 맞은 온라인 한복 쇼핑몰 '리슬'황이슬 대표

 


튀지않던 학창시절..원치않던 '일탈'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다

 스무 살. '산림공무원'이 되려 산림자원학과에 지원했다. 산림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 중에서도 산림공무원이 소방공무원이나 행정직보다 경쟁률이 낮아 좀 쉬울 것 같았다. 수능점수에 맞춰 지원해 무난하게 합격했고, 늘 그래 왔듯 '튀지 않는', 일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평범하기만 했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 건 친구 손에 이끌려 가게 된 '만화동아리'때문이다. 동아리 신입생 시절 만화 주인공처럼 옷을 입고 길거리를 행진하는 '코스튬플레이'(코스프레)에 참가하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엄마가 사준 운동화와 옷만 입어왔던 그녀가 이번만큼은 직접 옷을 고르고 또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그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주목받으며 길거리 한복판을 걸어야만 했다.
 그때 고른 옷이 만화 '궁'에서 여주인공'신채경'이 입은 퓨전한복이다. 인터넷으로 찾은 '옷본'을 토대로 엄마가 얻어다 준 한복 원단을 자르고 붙여  만들었다. 코스프레 현장에 옷을 입고 등장하자 사람들이 '직접 만들었냐, 재주 있다'며 말을 붙여왔다. 다들 '예쁘다'며 한 마디씩 하는 게 듣기 좋았다. 부끄러움은 자신감으로 변했고, 축제가 끝났어도 그 옷을 벗지 않고 그대로 입고 집은 채  돌아왔다.
 "정말 신기해요. 그때 코스프레를 하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정말 공무원이 됐겠죠?"


리슬 황이슬 대표=매일경제DB/김호영 기자


공무원 교재 대신 한복 공부 뛰어든 10년..20대 유명 온라인 쇼핑몰 대표로 성장

 코스프레에 입었던 옷을 옷장 속에 넣어두기 아쉬워 온라인 중고장터에 내놨고 그 옷은 좋은 가격에 팔렸다. 황예슬 리슬 대표(29)가 공무원이라는 꿈을 과감히 접고 '한복'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 시작점이다.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황 대표는 공무원 교재 대신 한복과 복식에 대한 책에 빠 져지 냈다. 집에 돌아가면 폐업하는 한복집에서 저렴하게 사 온 원단으로 엄마와 함께 직접 한복을 만들어 온라인을 통해 팔았다. "처음에는 '퓨전한복'을 만들었어요. 한복의 원단을 쓰면서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거예요. 저고리를 과감하게 없앤다던지, 치마를 여러 겹으로 만들어 풍성하게 보이게 한 화려한 디자인이었어요. 수요를 생각하고 만든 것보다는, 그냥 제가 만들고 싶어서 만들어 올리는 수준이었지요."
 의외로 퓨전한복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은 해외에서 공부 중인 유학생들이었다. 황 대표는 "유학생들이 파티에 참석할 때 한복을 입고 싶어 하는 수요가 꽤 있더라"고 말했다. 꾸준한 수요 덕분에 회사도 제대로 골격을 갖춰가게 됐다.
 '틈새시장'은 잘 공략했지만 한복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변화가 필요했다. 파티와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 했다. 황 대표는 "내가 만든 옷이 예쁜데, 왜 평소에는 사람들이 안 입을까 생각하면서 직접 몇 번 입고 다녔더니 너무 불편하더라"며 "우리나라 한복의 철학이 담겨있으면서도 언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브랜드가 지난 2014년 론칭한 '리슬'이다. 황 대표는 "한복이면서도 거리에 당장 입고 나가도 어색하지 않은 옷, 지하철에서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옷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예쁘면서 '편한' 한복 만들고 싶어..직접 입고다니며 디자인
 

 황 대표의 전략은 통했다. 예쁜데다 입기 편하니 사람들의 주문이 밀려왔다. 황 대표도 본인이 항상 리슬의 한복을 입는다. "처음에는 나도 안 입으면서 누구한테 내 제품을 팔겠냐는 생각으로 입었는데, 입기 시작하니까 예쁘고 편해서 매일 찾다 보니 이제는 옷장에 한복밖에 없더라고요(웃음)"
 사업 10년 차 베테랑이지만 아직 20대인 황 대표는 인스타그램 등 SNS를 능숙히 활용하며 한복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한복 입고 1000가지 행동하기'라는 주제로 다양한 사진을 올려 인기를 모았다. '한복 입고 커피 주문하기', '한복 입고 영화관 가기'같은 사진을 통해 생활 속 한복 패션을 알렸다. 사람들도 반응했다. 너도 나도 '한복 입고 ㅇㅇㅇ 하기'라는 주제의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복을 입고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도 올라왔다.


 한복에 대한 관심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홍콩같이 '한류 붐'이 있던 나라나 한국 유학생 덕분에 한복을 알게 된 유럽과 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황 대표는 2011년 '퓨전한복'브랜드인 손짱 해외 쇼핑몰을 만들었고 지난해부터는 리슬 중문몰과 영문 몰을 운영 중이다. 얼마 전에는 가 본 적 없는 나라, 브루나이의 한 언론 매체에서 직접 한복을 취재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알고 보니 매체의 편집장이 리슬 해외 쇼핑몰이 고객이었다."오히려 한국 고객보다 외국 고객이 한복에 대한 전문지식이 더 높아요. '구군복'(조선시대 문무관이 착용한 복장)이나 '동다리'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줄 수 있겠냐는 메일을 받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한국 고객들은 한복을 모티프로 만든 옷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무슨 한복이냐'라며 비난을 가하는 사람도 많아 안타깝다. 황 대표는 "한복에 '철릭'이라는 옷이 있어서, 이를 응용해 만든 옷이 있는데 한복이 뭐 이러냐며 비웃음과 악플을 받은 적이 있다"며 "속이 많이 상하고 안타깝기도 했지만, 더 열심히 한복을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한복입고 인사동 나들이(출처=황이슬대표 인스타그램)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깃과 고름이 있어야만 '한복'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한국의 자연미, 전통적이고 철학적인 요소, 소재 등 중 하나라도 곁들여 있다면 신한복 혹은 K패션이라고 불릴 수 있다고 보요. 아직은 리슬도 한복을 알리는 차원에서 한복의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차용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철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과 세계에 제대로 된 신한복을 알리고 싶어요

After Interveiw..

 문득 생각해본다. 황 대표가 '산림공무원'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그 꿈을 이뤄 차분히 공무원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황 대표는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제가 친구를 따라 만화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또 그때 너무 창피하다고 코스프레를 하지 않고 피해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그녀는 성실함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어느 자리에서도 자신의 몫을 해 내겠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신나고 재미있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네요"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미소가 행복해 보였다.

 어쩌면 지금 눈 앞에 닥친 상황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마법의 문'일 수도 있다는 기분 좋은 상상이 그녀에게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그 마법이 이뤄지기 위한 열쇠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열정과 관심, 노력이라는 열쇠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그 문은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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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런치에는 제가 과거 진행했던, 기억에 남는 인터뷰들을 담아내려 합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미처 들어가지 못했던 내용을 일부 첨언하고 시점에 맞춰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인터뷰 후에 느꼈던 단상들도 함께 곁들입니다.  당시 신문에 들어갔던 내용을 확인하시고 싶은 분들은  기사 원문을 클릭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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