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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n 17. 2016

'꾸밈없는 한식'으로 얻은 값진 미슐랭 2스타

도쿄 한식당 `윤가` 윤미월 셰프



"한국의 평범한 요리도 제대로 만들면 정말 맛있어요. 그걸 일본인들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에게 꼭 알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샐러드 대신 들기름으로 양념한 산나물을 전채요리로 내고, 마·고추·깻잎 같은 채소로 만든 정갈한 전이 다음 요리로 나온다. 계절에 맞는 재료가 들어간 잡채, 계절 생선으로 만든 회를 조금 맛보고 나면 밤과 대추 인삼이 들어간 갈비찜이 등장한다. 떡갈비, 파전, 게장까지 먹고 나면 삼계탕과 곰탕이 식사로 제공된다. 

 말로만 듣기에는 일반 가정의 명절 음식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음식을 만든 본인도 "그냥, 생일 때 차리는 음식이 차례로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이 평범한 메뉴로 이뤄낸 성과는 절대 평범하지 않다. 지난 2014년부터 일본 도쿄 최고의 번화가인 긴자 한복판에 자리 잡은 한식당 '윤가'는 전 세계 미식가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두 개를 받았다. 미슐랭 투스타를 획득한 한국인 셰프는 뉴욕에서 모던 한식당 '정식'을 운영하는 임정식 셰프와 윤가의 윤미월 셰프(57) 둘 뿐이다. 임정식 셰프가 한식을 세계적으로 재 해석한 '모던 한식'으로 인정을 받았다면 윤미월 셰프는 '있는 그대로의 한식'을 세계에 선보인 일등 공신이다.


 

인터뷰를 하며 웃는 윤미월 셰프


가수의 꿈 접고 요식업의 길로..식당 잘 될 수록 '제대로 된 한식' 알리고 싶어져 

 일본에서 1990년대부터 고깃집을 운영하던 윤 셰프는 사실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었다. 그녀의 꿈은 요리사가 아닌 '가수'였다. 무명 가수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공연활동을 하던 중 일본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본 절임음식인 쓰케모노를 맛보고, '이것보다는 한국 김치가 더 맛있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게 어쩌면 요식업 진출의 첫 발판이 됐다. "처음에는 일본에서 '야끼니꾸'라는 고깃집을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식 고깃집이었는데 김치와 돌솥비빔밥을 함께 냈더니, 많은 일본인이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어깨너머로 할머니와 엄마가 김장을 하시던 걸 유심히 봤던 게 요리 경험의 전부였지만 이를 토대로 담가 손님들에게 내놨던 김치가 일본 내에서 입소문이 났다. '미산'이라는 일본 기업에서 일본 내에서 김치 사업을 하고 싶다며 레시피를 전수해 달라고 찾아왔다. 흔쾌히 레시피를 적어줬지만 레시피를 토대로 일본인들이 만들어온 김치는 형편없었다. 윤 셰프는 "자존심이 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 김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한국에서 직접 김치를 만들어 공수해 주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이후 한국에 김치 공장을 만들고 일본에 김치 수출을 해 왔다. 이 회사는 현재 일본 내 김치 1위 업체가 됐다. 

 10년 이상 일본 내에서 탄탄대로를 달리던 윤 셰프가 여기서 안주했다면 미슐랭 2 스타의 한식당 '윤가'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윤 셰프는 "오래 일본에 살다 보니 일본 사람들이 한국 음식은 매운 순두부, 육개장 같은 자극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하더라"며 "야끼니꾸 집만 해서는 이런 오해를 풀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정말 한국 음식 다운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 전통요리'와 관련된 서적을 한국에서 공수해 와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신의 손맛을 더하고, 한국 작가들의 그릇에 담아내는 식당 '윤가'가 2014년 문을 열었고, 그 해 미슐랭 2 스타를 받았다.


한식은 한국 그릇에 담아야...윤가는 한식당일 뿐 아니라 한국 작가 알리는 갤러리

 사실 윤가를 내기 전, 그녀의 아들은 엄마의 도전에 반기를 들었더랬다. 윤 셰프의 아들 주현철 씨는 "사실 답이 안 나오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며 "긴자에 한식당을 낸다는 건, 한국으로 따지면 청담동 한복판에 식당을 낸다는 건데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전례도 없지 않았냐"고 말했다. 한국음식은 한국 그릇에 담아야 하고, 한국 작가가 그린 그림이 걸린 곳에서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나지 않겠냐는 게 윤 셰프의 생각이었는데, 정작 작가들이 '음식점에 내 그림이 걸리는 게 싫다'며 파투를 냈다. 이제는 윤가가 도리어 일본에 한국 작가의 그림을 알리는 '갤러리'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지만 3년 전만 해도 그의 도전은 외로운 싸움이기도 했다. 


(매일경제신문DB-김호영 사진기자)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선보이겠다던 윤 셰프는 이후 조선 후기 김치 조리법을 담은 책 '시의전서'도 접했다. 어깨너머로 배웠던 할머니의 김치가 이 책 안에 담긴 '숭침채'(배추통김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그대로 재현해 낸 김치로 이듬해 그는 '대한민국 식품명인 6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그녀가 김치명인이 된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다. 이 김치는 이달 중 현대홈쇼핑을 통해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소개될 예정이다.


다만 정성을 다해 요리할 뿐..한식을 제대로 만들면 어떤 음식보다 맛있어

 미슐랭 2 스타이자 김치명인이 된 그녀에게 비법을 말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비법이 없는데"라며 웃었다. 특별할 것 없는 메뉴이지만 그 평범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그녀는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정성을 다해'요리를 할 뿐이다. 전을 만들 때는 기름을 거의 쓰지 않고 구워내듯 요리한다. 갈비찜은 하루 이상 핏물을 제거한 고기를 한방재료 등으로 만든 육수에 네 시간 이상 중탕을 해 완성한다. 조미료는 절대 쓰지 않고, 가장 좋은 재료로 신경 써 요리한다. 

 윤 셰프는 '궁중요리'라는 말을 싫어한다고 했다. "내가 먹어보지 않은 것을 꾸며서 내고 싶지 않다"며 "우리나라에 지금 궁중요리 만들고 먹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내가 알리고 싶은 한식은 그게 아니었다"는 게 윤 셰프의 말이다. 그저 집에서 어머니의 등 너머로 지켜봤던 그 맛을 내는 것뿐, 일부러 예쁜 모양을 내는 것조차 싫단다. 이미 모양을 내려는 순간 한식에서는 그 손맛과 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투박하고 못나보여도 손으로 비비고 뭉쳐서 손님에게 내놓는 게 본인이 생각하는 한식이란다. 

 비법은 정말 없어서 말을 하기 어렵지만, 관심과 꿈을 버리지 않은 내가 삶을 살아온 비결인 것 같아요. 미슐랭 별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어요.
한식을 잘 만들어 알리고 싶었고 이 관심을 놓지 않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미슐랭에 등재되고 나니, 칭찬보다는 오히려 지적할 것을 찾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기도 해요. 그래도 개의치 않고 내 나름대로의 철칙을 지키다 보니 3년째 미슐랭 2 스타를 지키고 있지요. 꿈을 갖고 뛰다 보면 실현이 된답니다.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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