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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n 20. 2019

도전, '미니멀 재테크'

나의 아가들을 떠나보내며

"그래, 오늘이야."



몇 달을 망설인 끝에 `디데이`가 다가왔다. 3개월 동안 매일같이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고 버렸지만, 몇 번을 들었다가 도로 놨던 `아가들`이다.



이제 그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 왔다.



하긴, 그들은 나의 `아가들`이라고 하기엔 내 관심을 썩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서 선물해준 숄더백과 친구들이 돈을 모아 사준 지갑. 물건을 고르며 나를 생각했을 그 마음이 고마웠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준명품`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어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숄더백은 어깨끈이 너무 얇아 늘 노트북을 가방에 넣어 다니는 내가 들고 다니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무채색을 선호하는 나에게 친구들이 준 지갑은 너무나도 화려한 핑크색이었다. 결국 늘 간택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발견한 건 `중고 명품 매입` 서비스다.



판매하고 싶은 가방 등을 직접 매장에 들고 가면 현장에서 바로 감정 후 통장에 돈을 입금해준다. 샤넬·루이비통 등 우리가 생각하는 고가의 명품 가방뿐 아니라 내가 보유한 20만~30만원대 브랜드 제품도 매입하고 있었다.



`잘 사용해주지 못해서 미안,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어.`



무척이나 낯간지러웠지만 떠나보내는 물건들에는 반드시 예의를 표하라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조언을 받들어 물건들에 인사를 건넸다. 이후 온라인으로 확인해둔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매입 업체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중고 명품 매입 업체 1층에 전시되어있는 명품 가방과 옷.매입과 판매를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판매가격이 얼마일까 몹시도 궁금했지만 방문 목적을 상기하며 욕망을 잠재웠다.


내가 방문한 곳은 서울 고속터미널에 위치해 있었다. 온라인 중고카페 등을 통해 판매하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업체를 선택한 이유는 '즉시 매입'이라는 이유에서다. 나는 쉽게 지치고 싫증을 내는 성격이기 때문에 물건 처분 시에는 신속하고 간편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놓았다. 중고카페에 물건을 올려놓고 하염없이 판매가 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이들을 놓아주자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것과는 달리 떠나보내는 과정은 너무나도 짧았다. 방문에서 입금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건물 1층에 도착해 안내직원에게 "매입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하자 바로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상담신청서'를 작성하라고 일러주었다. 신청서에는 이름과 전화번호, 내가 판매하려는 물품의 브랜드와 종류를 적게끔 되어 있다.



상담신청서

상담신청서 작성이 끝나면 정품인지 감정을 받기 위한 장소로 이동한다. 명품감정사가 매입 물건이 상하지 않도록 장갑을 끼고 신중하게 제품 곳곳을 살펴본다. 한 5분여 꼼꼼히 뜯어보는 그의 모습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동시에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5분간의 검수가 끝나고, 그는 조심스럽게 감정 결과를 말했다.


"주름 등 사용 상태와 구입 가격 등을 감안했을 때 가방은 2만원, 지갑은 1만원입니다."


"네? 네?!"


지갑은 현재 세일 가격을 감안하더라도 동일한 디자인이 같은 브랜드에서 20만원에 판매되고 있고 가방 역시 구입 가격은 30만원이다. 그런데 3만원이라니, "죄송한 말씀이지만, 주름 등 사용감과 저희가 판매하는 가격을 생각하면 이렇게밖에 드릴 수가 없네요."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는 책에서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구라다 마키코는 언젠가 한 달치 월급을 쏟아부어 샀던 가방을 팔려고 내놓았다가 놀랍도록 싼값이 매겨져 있는 것을 보고 망설였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비싼 물건을 살 때 자신에게 꼭 물어보기로 했단다. '언젠가 이 물건을 되팔아야 할 때는 지금 가격의 3분의 1도 안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


한국의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인 나는 한국에 살면 이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이 물건을 되팔 때는 지금 가격의 10분의 1도 안될 텐데, 그래도 괜찮겠어?'라고.


며칠 뒤 명품 매입 업체의 온라인몰에서 내가 판매한 가방과 지갑을 발견한 나는 또 한 번 충격을 받게 된다. 사용감이 많다던 내 가방은 A급(중고 명품은 사용 상태에 따라 S, A, B, C 등으로 등급을 나눈다)으로, 가격은 9만5000원에 올라와 있었다. 1만원에 판매한 지갑도 역시 A급으로, 가격은 4만5000원이다. 나는 3만원을 받고 그들과 이별했고 그들은 전문가의 사진 실력을 거쳐 총액 14만원의 물건이 되어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솔직히 제품의 구입 가격과 판매 가격, 업체 매입 가격을 공개한 것은(선물 준 이의 마음을 생각해 구체적인 브랜드와 제품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나의 소중한 물건들을 헐값에 넘겨받은 매입 업체를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계산대로 움직였을 뿐이고, 나는 일단 집에서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던 물건을 정리하면서 3만원이라는 돈을 벌었(?)으니 손해는 아니다.



다만 이 쓰린 경험을 통해 나는 나와, 여러분의 물건이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가치가 낮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 팔아보니 알겠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해야만 하고, 오랫동안 지니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물건이 아니라면 함부로 구입해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는 이날 내 통장에 들어온 3만원보다 이 마음이 나의 '미니멀 재테크'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건을 한 번 팔아보시라. 그럼 아무것도 함부로 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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