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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l 04. 2019

서재를 비우고 지갑을 채우자

나는 책 수집가가 아닌 독서 애호가

코엑스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 /사진=별마당 공식 페이스북 캡처

내가 최근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은 코엑스몰에 위치한 `별마당 도서관`이다. 탁 트인 복층형 공간에 천장까지 뻗어 있는 서가에 5만권 넘는 책이 촘촘히 꽂혀 있다. 원하는 책을 꺼내 들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마음껏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물론 시간적인 여유만 허락한다면 말이다.처음 이곳을 보며 든 생각은 `아, 내가 꿈꾸던 서재란 이런 곳이구나`였다. 하지만 꿈은 말 그대로 꿈일 뿐이다. 서울 한복판, 2800㎡(약 850평) 규모에 지어진 별마당 도서관처럼 내 집을 꾸밀 수는 없는 일이다. 5만권의 책을 수집할 공간도 없다. 그리고 솔직해져 보자. 나에게 서울 중심부에 이 만큼 넓은 공간이 주어진다면 과연 그 공간을 책이 가득한 서재로 꾸미겠다는 결심이 설까? 고민할 시간 없이 답은 `아니오`다. 


방 3칸짜리 작은 나의 집에도 서재가 있다. 꽤 많은 책이 있고 책상과 의자, 스탠드도 구비해 두었지만 내가 내 집에 있는 책을 이 책상에 앉아 읽은 게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에 답을 하기는 참 부끄러운 수준이다. 굳이 `책을 읽느라` 보낸 시간을 따지자면 별마당 도서관에서의 시간이나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어차피 내 집은 별마당 도서관이 될 수 없고, 기껏 여유 시간이 생겨서 책을 읽고 싶을 때면 나는 책을 사거나 빌려서, 혹은 가끔 내 서재에서 한 권 꺼내 들고는 스타벅스에 간다. 사각형 구조 아파트의 단순한 형태의 책장을 꽉꽉 채운다고 건축 전문가의 인테리어처럼 멋스러운 서재가 탄생하지도 않는다. 



감탄이 나올만큼 멋진 도서관이지만..내집엔 들일 수가 없겠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여겼다고 한다. 누구나 좋아하는 물건은 좀처럼 버리기가 어렵다. 그 역시 물건을 버리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처럼 느꼈단다. 하지만 사사키 후미오 작가는 자신의 일부로 여겼던 책을 처분하고 나서 비할 데 없는 해방감을 얻었다고 한다. 


나 역시 책에 애착이 많았다. 이미 한 차례 `책 정리`에 대한 글을 쓰고도 또 이렇게 책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어떤 책을 비울까`가 지난 글의 주제였다면, 이제는 `집착과 애착을 완전히 떨쳐내는` 확인 사살에 이어 `어떻게 이들을 처분할까`에 대한 가이드이다. 


책은 애착이 있는 물건이고 쉽게 닳지 않아 바로 재활용품으로 처분하기에는 참 아깝다. 모든 물건이 그렇겠지만 내가 처분할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마음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아까운 마음은 더 커진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처분 방법은 `중고서점 판매`다. 책을 판매해 버린다는 죄책감을 덜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익까지 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중고서점 판매에 가장 특화되어 있는 곳은 알라딘 중고서점인데, 나처럼 집 근처에 매장이 없는 경우라면 인터넷으로 `중고박스`를 주문하면 된다. 20권의 책을 보낼 수 있는 박스 한 개당 가격은 1만원꼴로, 이 박스에 담아 책을 보내면 판매한 책 가격을 정산해 주면서 박스 값도 같이 환불해준다. 중고 박스를 주문하면 집 앞으로 박스가 오고, 책을 담아 집 앞에 내놓고 수거 신청을 하면 다음날 바로 수거해 가니 무겁게 책을 들고 여기저기 이동할 필요도 없다. 


사전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책 뒷면의 바코드를 스캔해 매입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책을 담으면 끝. 밑줄이 그어져 있던가 젖은 흔적이 있는 책 등 훼손된 책은 판매가 불가능하니 참고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일단 총 5박스, 총 100권의 책을 팔아보았다. 내 수중에 들어온 돈은 `14만6100원`이다. 책을 구입했을 당시의 가격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물건 값에 집착한다고 내게 남는 것은 없으니 어른들 자주 쓰시던 말을 떠올려본다. "하루 종일 땅을 파봐라, 10만원이 나오나" 


비슷한 서비스로는 온라인서점 예스24에서 진행하는 바이백서비스가 있다. 택배상자를 구하고 직접 포장해 보내야 하는 등 약간의 번거로움은 따르지만 포인트로 적립할 경우 20%를 더 얹어주고, 이 포인트로 공연 등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알라딘에서 매입하지 않는 서적을 예스24에서는 매입하는 경우가 꽤 있어 두 사이트를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하면 좋다. 매입가격이 1만원이 넘어가면 택배비는 무료다. 이 외에도 아기 전집류를 중점적으로 매입하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은 `개똥이네`다. 




사실 중고서점에 책을 판매하는 것 보다 더 `뿌듯한` 선택은 내가 정말 좋아하던 책을 지인에게 선물해 주는 것이다. 팔고, 주변에 나눠주고도 다 처리가 되지 않은 책들은 아름다운가게 등 기부단체에 기증했다. 근처 도서관에 기증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읽을 만한 책 위주로 구비해야 한다는 특성상 `출간된 지 4년 미만·학습지 제외` 등 지역마다 약간의 조건이 따르니 사전에 체크를 해봐야 한다. 


비워 보며 확실해진 사실은 책을 비운다고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사키 후미오 작가는 "좋아하기에 자기의 일부로 여겨지는 물건을 버리는 일은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자기 인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가득 쌓인 책으로부터 충만함을 얻은 게 아니라, 가득 쌓인 책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리고 싶었던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책을 정리하며 나 역시도 자문해보았다. 가득 쌓인 책으로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오늘도 나는 내가 원하는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 아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아까운 맘이 들 때면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오자키 유리코의 말을 기억해본다. 

"아깝다는 개념은 버릴 때가 아니라 살 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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