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새봄 Jul 15. 2019

마트는 내 창고

마트 산책의 행복은 달콤한 나의 집을 만드는 데 양보하세요

"쇼핑 카트 안에는 두 사람의 생활이 들어 있습니다. 

소중한 것을 담아 옮기고 있구나 생각하면 

치에코 씨는 행복해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마스다 미리의 만화인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에서 주인공 치에코 씨 부부는 매일 저녁 퇴근길 마트에서 만나 소소한 데이트를 즐기며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게 일과다. 우리 부부 역시 마트 데이트를 소소한 즐거움으로 여겼다. 치에코 씨 부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마트`는 동네 슈퍼가 아닌 대형마트였다는 점이다. 신혼 때는 주말이면 마트에 들러 남편과 함께 장을 보고 같이 음식을 만드는, 치에코 씨 못지않은 소소한 행복을 누린 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해질수록 `마트 산책 겸 쇼핑=요리`라는 공식이 깨지는 날들이 더러 생겼다.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하지 않은 채 마트에 가서 갖은 음식거리를 구입하고는 이미 쇼핑에 에너지를 소진한 나머지 요리하기가 귀찮아져 마트 근처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가기도 했다. 


큰 마음을 먹고 요리를 한다고 해도 멋진 그림은 아니었다. 가령 닭볶음탕을 한다고 했을 때 닭은 한 마리만 산다고 해도 파, 양파, 마늘, 당근, 대파, 청양고추 등 재료를 구입하면 짐은 산더미처럼 불어났다. 요리를 하고 나서 재료가 다 소진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양파는 하나만 필요한데 1㎏짜리 한 망을 산다. 감자와 당근, 대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트에도 `한 끼용` 소분 재료를 팔기는 했지만 당시 나에게 그런 재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양파 한 망에는 여섯 개의 양파가 들어 있지만, 그런 `한 끼 양파`는 단 한 개가 반 망 값이 아닌가. g당 가격을 따져본다면 절대로 손 대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자고로 `다다익선`이다. 많이 살수록 가격이 싸진다. 


이렇게 경제적인 `주부 코스프레`를 하며 카트에 이것저것을 담다 보면 어느새 10만 원어치가 훌쩍 넘는다. 생수도 사고, 맥주도 사고, 과자도 사고… 살 것이 도처에 널려 있고 내 눈은 반짝거렸다. 당장 필요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 먹지 않겠나 싶어서 신나게 물건을 구입하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 먹지 않겠나`라는 내 생각은 번번이 실패했다. 한 캔을 사려다 여섯 캔들이로 구입한 참치캔은 한 달이 넘게 집에 굴러다녔다. 요리할 때 조금씩 쓰고 냉장고에 넣어둔 각종 채소는 곰팡이가 슬었다. 이들은 냉장고에 너무나 `적재`돼 있어 한 번 들어가면 도무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근을 사서 냉장고에 넣으려고 신선야채칸을 열었는데 전혀 신선하지 않은 당근 세 개가 저 구석에서 병들어 가고 있는 장면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들이 냉장고에서 나오는 건 내 입이 아닌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아, 내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사망·실종사건은 `달콤한 나의 집`을 살벌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면서 나는 나와 우리 집과 내 냉장고 속 식재료 모두를 구제하기로 했다. 방법은 나의 놀이터이자 데이트 장소이자 산책 코스였던 마트를 창고이자 대형 냉장고로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마트를 `필요한 물건을 놓아둘 장소를 확보하고 꼼꼼히 관리해 주는 창고`라고 말한다. 편의점은 갑자기 물건이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 일부러 24시간 열어두는 창고다. 이곳에서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가지러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게 그의 발상이다. 


생각을 바꾸면 늘상 습관처럼 반복했던 `세일이라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우리 부부는 마트 신용카드를 만들어두고 청구할인 기준인 7만 원 이상을 채우려 꼭 노력하곤 했는데, 결과적으로 다 못 쓰고 버리는 비용을 계산하면 청구할인보다 더 크다는 판단에 가격 맞춰 사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장보기 습관을 보다 수월하게 바꿀 수 있었던 배경은 온라인 쇼핑몰의 눈부신 배송 서비스 진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온라인 쇼핑몰은 오프라인 쇼핑몰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창고인 데다 원하는 물건을 집까지 가져다 주기까지 하는 간편함까지 탑재했다. 


물론 온라인 쇼핑몰에도 쿠폰과 배송비라는 장벽이 있다. 배송비는 사실 내가 사용하는 서비스에 대해 지불해야 하는 당연한 비용이지만, 다른 상품을 조금만 더 구매해 합배(합배송)하면 배송비가 사라지는 무배(무료배송)가 가능하니 자꾸만 장바구니를 채워 넣게 된다. 쿠폰 역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해야 사용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한다. 


하지만 적게 사기로 마음먹었을 때 쿠폰은 청구할인처럼 포기할 수 있는 요소다. `무배`의 유혹은 드디어 한국에도 들어온 배송 멤버십(무료배송 서비스)을 이용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은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유료 회원에 가입하면 최소 구매 기준이나 배송료 없이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한국 쇼핑몰로는 쿠팡이 로켓 와우라는 유료 배송 멤버십을 시작했다. 두 달간 시험 이용해 본 결과 유료 서비스(월 2900원)로 전환돼도 충분히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자기 전 다음날 먹을 아기 간식과 계란 등을 미리 구입해두고 아침 출근 전에 받는 새벽 배송은 맞벌이 부부에게 최적화된 서비스이기도 하다. 


옥션·지마켓의 `스마일 배송`도 적극 이용하고 있다. 연 3만 원 유료회원인 `스마일 클럽`에 가입하면 매일 스마일 배송 무료 쿠폰을 받을 수 있고, 1만 원 이하 소액 구매도 배송비 없이 다음날 수령이 가능하다. 


쇼핑 습관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의 유료회원이 된다는 게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최저가 검색과 배송비 절감 등 최적의 `쇼핑 전략`을 짜기 위해 인터넷 바다에서 헤매며 허비하는 내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아깝지는 않다. 


다만 월간 구매액을 놓고 보면 아직 큰 변화가 없다. 아직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고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꿈나무이므로, 이 정도는 눈 감아 주기로 한다(나는 관대하니까, 하하). 차차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일단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눈에 보이니,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하지 않은가! 


쇼핑몰을 향한 쓴소리도 하나 더, 소액으로 자주 물건을 구매하다 보니 불필요한 쓰레기가 쌓인다. 주로 신선식품을 주문하다 보니 보랭 팩과 스티로폼 등 배보다 배꼽이 큰 포장재가 내 양심을 건드린다. 환경 보호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의 편의를 위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든다. 이 역시 차차 개선되리라 기대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재를 비우고 지갑을 채우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