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Aug 01. 2019

내 물건은 나만 소중해

공유경제 도전 좌절기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 중 하나로 빌려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거나 한번 이상 쓰지 않을 것은 빌려 쓰라는 것이다. 아이 장난감이나 옷, 청소기, 공기청정기, 매트리스 등 다양한 렌털 서비스를 이용하면 짐이 늘지 않고 이 물건이 순환하기 때문이다.


일견 타당한 말이지만 아직은 `내 것`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로서는 렌털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없을 땐 빌리는 게 말이 되지만, 솔직히 있는 걸 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미 오랜 기간 `쇼핑 요정`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청소기도 공기청정기도, 매트리스도 이미 잘 구비되어 있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는 나의 `이상`만으로 있는 물건, 게다가 이미 잘 쓰고 있는 물건을 버리고 동일한 다른 물건을 렌털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 역시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한 공유경제시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차에 우연히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우연히 온라인 서핑 중 `안 입는 옷으로 월 수익 내보자`는 광고 링크를 접했다. 내가 물건을 빌리는 것이 아닌, 내 물건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공유경제에 참여하는 것이다.



옷을 많이도 버렸지만 내 옷장에는 유독 버리기 힘든 옷이 몇 벌 있었다. 결혼하면서 한복 대신 장만한 고급 원피스와 재킷, 동생의 결혼식 때 선물 받은 예복은 한두 번 입고 몇 년간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다시 입지는 않을 것 같지만 유독 값이 나가는 물건이라 섣불리 처분하기는 힘들었다. 지금은 잘 입지 않지만 당시에는 몇 시간을 백화점을 돌며 구입했던 이 아이들을 더 이상 내 옷장에서 잠들게 하지 않고 `공유 옷장`에 보내보기로 했다.


내가 이용한 공유 옷장은 `클로젯 셰어`라는 업체로 개인이 소유한 옷과 가방을 다른 사용자에게 공유해 수익을 내는 개념이다. 내 옷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시스템인 만큼, 까다로운 검수를 거친다. 공유가 가능한 브랜드도 고가 브랜드 위주로 한정되어 있는 편이다. 회원 가입을 하고 신청을 하면 옷을 담을 수 있는 봉투를 보내주고, 이 봉투에 옷을 담은 후 다시 온라인으로 신청을 하면 1~2일 내에 무료로 회수해 간다. 검수를 통과한 옷은 클로젯 셰어에서 관리·대여를 해 주며, 탈락한 옷은 다시 무료로 집에 보내준다.



클로젯셰어 홈페이지 캡처


내가 보내본 옷은 총 10벌, 사용감이 적고 반년에 걸친 `버리기 과정` 중에서도 살아남은 (내 기준에서는) 매우 훌륭한 친구들이다. 게다가 다행히도 대부분 업체가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공유 옷장에 걸릴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공유경제에 살아남게 된 옷은, 슬프고 놀랍게도 단 한 벌에 불과했다. 나머지 9벌의 옷은 고스란히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아까운 마음으로 이들을 떠나보냈던 내 입장에서는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니 너희들이 뭐가 모자라서 탈락이니`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항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공유경제에 합류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온 아까운 내 옷들은 그새 `어떻게든 처분하고 싶은 옷`으로 변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까운 마음은 완전히 사라지지를 않아서 또 다른 공유기업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알게 된 기업이 `마켓인유`다. 이 회사는 공유기업이라기보다는 `중고 의류매장`이다. 상태가 좋은 중고의류를 매입해 저렴하게 판매해 물건을 `순환`시키는 사회적 기업이다. 중고에 대한 인식을 바꾸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적이란다.


마켓인유 홈페이지 캡처

다시 나에게 돌아온 물건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마켓인유에 보내보았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내가 보낸 신발은 `굽 7㎝ 이하`라는 매입 조건에 맞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모두 탈락, 다른 옷들도 보관 과정에서 생긴 미세한 보풀과 오염 등으로 인해 대부분 매입 불가 판정을 받았다. 매입 불가 물품은 장애인 직업 재활을 돕는 비영리 기관인 굿윌스토어에 기부하도록 선택할 수 있어 모두 기부하기로 했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겠다고 물건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유독 이번의 비움은 특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작업이었다. 버리거나 쓸만한 물건들은 기부하자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비싸게 산 물건들이라 그만큼 보상심리가 컸었기 때문에 아마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이라도`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던 욕심이 남아 있었던 게 화근이다.



옷장을 열어 볼 때마다 막상 손은 안 가면서도 언젠가는 입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고 이 생각들이 쌓여 아까움을 키운 것 같기도 하다.


큰 맘먹고 큰돈을 주고 산 옷들이니 다른 이들도 그리 값을 쳐줄 거라 믿었지만, 막상 업체를 통해 물건을 대여하거나 팔아보려고 해 보니 이 옷들은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경제성 제로`였다는 것을 깨닫고 한동안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옷은 사실은 구닥다리에 불과했고, 제대로 입지도 않은 채 보관 과정에서 이미 상당히 손상이 진행됐다고 생각하니 우울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번 경험은 또 한 번 나의 생각을 전환해주는 계기가 됐다. 더 이상 `안 쓰는 물건`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려 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만 소중했던 물건은 때로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상품성이 전혀 없는,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일 뿐이다. 모든 물건은 개봉을 하면 중고제품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하락하게 마련이다. 시쳇말로 `아끼면 똥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확인하며 깨달은 진리다. 이를 깨닫고 나니, 비우는 과정이 조금 더 홀가분해졌다. 적어도 `비싼 물건이니까` 망설이던 과거의 나에게서는 벗어난 듯하다.


미니멀 라이프 수납법이라는 책에는 "아직 쓸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을 버리는 것은 마음이 아프고 버리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물건을 버리지 않도록 구입할 때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버리면서 마음이 아파본 만큼, 이제는 구매에서도 `비움`을 염두에 둬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트는 내 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