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환영받는 명함
‘책’이라는 잘 팔리지 않는 환상의 매체를 만든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종종 편집자의 명함을 기쁘게 맞이해 준다.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
“아, 이 출판사. 블로그에서 한 번 본 적 있어요.”
한 권만 내놓은 출판사이지만 우리 출판사를 벌써 알고 있다는 사람을, 놀랍게도 만나 보기도 했고, 원고를 쓰고 있다면서 명함 하나 있으면 달라고 말씀해 주시는 예비 작가님들도 있으시다. 독서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명함을 돌릴 기회도 있어서 참 감사했다.
그동안 명함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거의 쓸 일이 없는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내미는 일이 생기고 보니 어색했다. 대표님은 스피치아카데미 개소식을 할 때나 예비작가님들을 만날 때마다 명함을 잘 챙겨 오라는 내게 말씀을 건네시곤 하셨다. 나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를 대신할 내 명함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디밀곤 했지만 처음에는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내 옷이 아닌 옷을 입는 느낌도 들었고 편집자 ◯◯◯라고 쓴 글자에 맞게 살아갈 사람이, 과연 내가 맞는가 스스로 의구심을 품었다. 이미 몇 차례 얘기했지만 ‘편집기획팀’이라는 내 명함 속 직함이 낯설고 쑥스러웠다. 팀원 한 명뿐인 팀인데 정말 당당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오랜만에 손편지를 받았어요. 감사드려요.”
그런데 이런 글과 함께 출판사 단톡방에 그림 하나가 올라왔다. 출판사 공식 블로그에서 서평이벤트를 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서평을 써 주신 분들께 내 명함과 소소한 선물을 보내 드렸었다. 그때 보내 드린 내 손편지(엽서)와 명함, 선물(줄자)를 어떤 독자(이자 작가님)께서 직접 살뜰히 그림으로 그려서 채색까지 해 주신 것. 손수 그린 그림이라는 커다란 선물로 독자분이 이리 화답을 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황송했다. 게다가 이 그림이 올라오자, 서평 이벤트에 참여한 다른 작가님께서,
“전 명함이 더 마음에 들더라고요.”
라며 내 명함을 칭찬 및 격려해 주셨다. 당시 내 편집자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밑불이 되는 글을 씁니다.
돋을볕부터 글자를 닦습니다.
봄뜻을 품은 마음으로 책을 편집합니다.
내 명함에 처음 품은 마음 그대로, 다른 분들이 칭찬해 주신 그 말씀대로 정말 이렇게 살고 싶다. 이런 편집자로 늙고 싶다.
작가님 글에 밑불을 놓아 드리고 싶다.
열심히 글자를 닦는 성실한 편집자가 되고 싶다.
작가님께 봄 같이 설레는 편집자로 남고 싶다.
앞으로도 편집자 명함만큼이나 환영받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
*밑불: 불을 피울 때에 불씨가 되는, 본래 살아 있는 불.
*돋을볕: 아침에 해가 솟아오를 때의 햇볕.
*봄뜻: 봄이 오는 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