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지_5일 차
내 심장 안에 온통 너 있다 (brunch.co.kr)
아직 너는 여기 내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에 그대로 온통 뛰고 있다. 바쁘게 새로 이사 온 집을 단장하다가도 밤이 되면 너를 떠올린다. 이곳은 너와 달리 정말 깜깜하다. 귀뚜라미 소리가 잘 들린다. 방충망에 나방에 달라붙는 일도 흔하다. 불빛이 있는 곳으로 종종 곤충들이 모여든다. 밤이 되면 갑자기 이곳은 자연이 된다.
문득 601호가 떠오른다. 너는 현란한 불빛을 내 방 베란다까지 비춰 주던 녀석이었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밤이 되면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이곳에서는 사람 구경보다 '개미 새끼' 구경이 더 쉬울 듯하다.
이곳의 방은 네가 가진 방보다 조금 더 많은 방이 있다. 이사를 하며 가격은 줄여 왔는데 역세권에서 멀어져서인지 본의 아니게 방은 외려 더 늘었다. 그 대신 전철역에서 멀어졌으므로 이제 나는 세상에 가 닿기 위해서는 더 오래 걸어야 한다. 다리 하나는 튼튼해질 듯하다.
방 크기나 집 크기로 언뜻 보면 우리는 부유해진 것도 같다. 내 방도 예전 방보다 방이 참 많이 길어졌다. 아, 베란다는 너의 폭보다 30cm가 더 적다. (베란다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던 너였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다.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도 했다. 너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 따위야 먹을 리도, 먹을 까닭도 없겠지만 나는 예상컨대 새 집에 적응을 잘할 듯하다. 너에게 처음 적응하던 그때처럼 새 보금자리에서도 당분간은 ‘새 신을 신고 폴짝’의 심정으로 방을 꾸미고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을 할 것이다. 그런 정비의 시간 동안 자연스레 나는 세월이라는 지우개를 너에게 문대고 있으리라. 의도하지 않아도 너는 내게서 빠져나갈 것이고 새로운 풍경이 구석구석 내 방 안에, 내 마음 안에 들어차겠지.
‘새로움’이라는 신선한 공기. 들이마시고 내쉬니 꽤 상쾌하다. 너에게도 이 공기가 있었을까, 17년을 살며 혹시 내가 다 잊은 걸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러나 진득하니 내 곁에 있어 준 17년의 너도 종종 기억날 것 같다.
아직 군데군데 너라는 찌꺼기가 내게 들러붙어 있으므로.
(사진 출처: unsplash@Fernando R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