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일지_4일 차
‘내 아가씨’가 온통 이곳에 담겼다. 아마도 그래서 내 발걸음을 네게서 떼는 일이 더 더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친구는 말했다.
“거기에 뭐 두고 온 거라도 있어? 꿀 발라 놨어?”
고향을 잃은 실향민처럼 이사 오고 나서 밤마다 옛집을 그려 내고는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야 만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친구가 내게 말한다. 거기에 뭐 두고 온 거라도 있냐고.
아니다. 전부 챙겨 왔다. 모조리 싹 다 긁어 왔다.
이삿짐 업체의 세심함과 치밀함에 놀란 것이, 나도 잊고 있던 사진 한 장까지, 내가 버리려다 버리기를 잊어버린 건강보험료 영수증까지! 이사 온 책장 위에 고이 놓아두고 갔다. 아니 어디서 이런 걸 다 찾았지?
그렇게 하나하나 다 챙겨 온 것 같은데 끝내 601호, 너는 챙겨 오지 못했다. 두고 온 것이 있긴 있었다는 이야기다. 거기 두고 온 너, 그리고 거기 두고 온 나까지.
17년을 너와 살았다. 스무 해가 넘도록 살던 곳을 떠나 17년 전 너에게로 이사 오던 그날을 문득 떠올린다. 왜 그때보다 지금이 조금 더 힘들까. 늙어 죽을 때까지 머무를 곳이라고 생각하고 유언처럼 너를 확신하던 탓일까.
서울 작은 동네에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다 보내고 대학교까지 졸업했다. 동네 5인방 친구들도 다 예전 그 동네에 두고 왔다. 바로 옆집에 있던 떡볶이집도 맛있었는데 그곳도 두고 왔다. 30초 거리에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은 내가 대여섯 살 때도 나의 놀이터였던 곳이었다.
그렇게 정이 들고 익숙했던 곳을 떠났기에 나는 너에게 온 17년 동안 종종 그곳을 꿈꿨다. 시장 골목이 나오고 버스를 타면 어느 다리를 건넜다. 우회전을 하면 어느 건물이 있었고 좌회전을 하면 내가 다니던 학원이 보였다.
꿈에서도 눈을 감고 회상해 본 시간 속에서도 그곳은 그랬다. 그런데 차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자꾸만 내 기억에 안개가 끼었다. 옛 고향은 회상이 아닌 상상이 만들어 낸 공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21년을 살고 떠난 곳을 17년 동안 추억했다. 틈틈이 추억했지만 틈틈이 잊혔다. 하루하루 현재의 기억이 쌓였으므로 첫 번째 내 집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도 내 꿈에서도 사라졌다. 그곳에 관한 기억이 점점 말라 죽고 있었다. 이제는 현관을 들어서서 어느 쪽이 내 방이었는지, 내 방 구조는 어땠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았는데도 말이다. 옛 앨범이나 뒤져야 그곳을 억지로 기억해 낼 수 있다.
너에게로 이사 온 17년 동안 고작 서너 번 옛 동네를 찾아갔고, 그마저도 살던 집을 보고 온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친구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어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는 나에게 어쩐지 네가 이런 말을 해 오는 듯하다.
-그게 곧 내 미래네. 너에게서 잊히는 거. 나와의 17년도 점점 시들어 가겠지.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이란 것이 생기고 나서 처음 살았던 옛집을, 나는 지금 거의 잊었다. 그리고 아마도 기억력의 한계, 혹은 현실이라는 무게 등으로 나는 또 그렇게 예전의 방식으로 차례차례 601호, 너를 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17년의 너를 종종 다시 만날 수는 있을 것 같다. 예전 그 집에 내 친구들을 두고 왔듯이, 나는 너희 집 근처에 귀여운 조카들 집을 두고 왔다. 아직 동생이 그 동네에 살고 있다.
동생이 일이 있는 날이면 출근하듯 너에게 간다. 정확히는 너의 근처를 지난다. 어제도 너를 지났다. (너에게 가기 위해 항상 내리던 그 버스 정류장을, 오늘은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쳤지만.) 여전히 너는 아직 그곳에 있더라.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서인가? 지금 넌 내 꿈에는 안 나타난다. 너를 떠난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그럴지도 모른다. 아직 너는 여기 내 좌심방 좌심실, 우심방 우심실에 그대로 온통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