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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Jul 18. 2019

아버지가 책을 내셨다, 6년 전에.

프롤로그_아버지의 시간, 그 65만 시간의 온도

아버지가 책을 내셨다

아버지가 책을 내셨다. 출판사를 통한 정식 계약은 아니었지만 제법 책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글을 쓰셨다. 거의 평생에 걸쳐 글을 쓰셨으니 그것을 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65만 시간이 넘는 세월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1만 시간 동안 하나의 일에 집중하다 보면 전문가가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장장 65만 시간을 살아 내셨다. 그 시간들이 집중력이 탁월한 시간들이었는지 잘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는 65만 시간 이상의 삶을 지금도 살아가고 계시다. 그러므로 1만 시간의 법칙에 의하면, 65만 시간 이상을 살아온 우리 아버지는 생(生)의 전문가다. 그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여기서 삶의 질과 삶의 양을 구태여 따지지는 않겠다. 아버지 인생 중 35만 시간 정도를 함께해 온 이 딸내미가 누구보다도 그 옆에서 아버지를 꼼꼼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역시 전문가였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일 줄 알았다



생의 발길질에 때로는 짓눌리기도, 때로는 숨어들기도, 때로는 온몸으로 맞서기도 하면서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생을 있는 힘껏 살아 내셨다. 그것을 내가 보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버지의 시간을 몰래 훔쳐 와 지금 이곳에 적고 있다.      


 글을 쓰는 일, 혹은 책을 내는 일. 그것은 아버지의 소원이셨을지 모른다. 그 소원이 자식들 앞에 ‘그 여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도착하였다. 6년 전의 일이었다. 동네 인쇄소를 찾았다. 작은 가게였고, 전단지를 제작하거나 작은 책들을 제본해 주거나, 혹은 칼라 복사를 해 주고, 혹은 도장을 파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거기서 '아버지의 꿈' 100권을 인쇄하였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는 데 그다지 무겁고 큰돈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책이 나오고, 아버지는 그 무거운 책을 다 실어 옮기며 굳이 미소를 감추지 않으셨다. 그 입가를 나는 보았다. 친척들에게, 친구들에게 아버지는 신나게 자신의 책을 나누어 주며, 그 미소 담긴 입가로 이런 말을 내뱉으셨다.    

 

 “주소 좀 불러 주소.”     


 연락이 뜸한 고향 사람들에게도 아버지는 전화를 돌렸다. 굳이 그럴 것까지야,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옆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당시 65만 시간 가까이 산 사람이었다. 그 외에 또 무슨 자격이 필요할까?





아버지를 읽다


좀체 의자에서 일어서는 법 없이 원고와 씨름하던 아버지. 그만하고 좀 쉬어요. 어머니의 말씀에도 안경을 추켜세우며 원고 속으로 다시 시선을 모으던 아버지. 이것 좀 봐라, 라는 한마디를 종이 한 장과 함께 큰딸의 손에 던져 주던 아버지. 어쭙잖은 딸의 의견에도 크고 넓은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그 시간들은 다른 어떤 시간들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이었다. 꿈이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완성된 원고를 손안에 들고 한 장 한 장을 넘겨보고 있다. 아버지 안에 담긴 작은 이야기들이, 손끝으로 느껴지는 책장의 감촉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왕잠자리를 쫓는 어린아이였던 아버지', '어깨에 진 짐을 펜 하나에 의지해 온 중년의 아버지', '또 다른 꿈을 꾸는, 나이 지긋한 아버지.' 이런 여러 모습의 아버지들이 한 권의 책이 되어 새 작품으로 태어났다. 내가 알았거나 혹은 놓쳤거나, 아니면 내가 모른 척했을지 모를 수많은 아버지들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아버지의 글에 대한, 그리고 아버지의 삶에 대한 멈출 수 없는 공감으로 가슴 가득 평안과 위안을 느꼈다. 이에 나는 숨길 수 없는 열정을 이렇게 하나의 책으로 펼쳐 내신 아버지의 길고 긴 노고와 깊고 깊은 의지에 존경과 감사를 보내고자 한다. 더불어 아버지의 글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딸로서 지금 손안에 쥐고 있는 이 원고, 아니 지금 이 손안에 펼쳐지고 있는 아버지의 삶 자체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동네 가게에서 태어난 우리 아버지의 책에 이런 추천사를 덧붙였다. 딸의 효심이 자발적으로 불붙어 추천사를 쓴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먼저 딸에게 부탁하셨다. 당시 나는 아버지 원고를 손봐 드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대놓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나를 내어놓으신 분이다. 내게 생명을 주시고, 이 커다란 인생 무대에 날 데뷔시킨 장본인이시다. 내가 알아서 먼저 추천사든 뭐든 써 드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가 닿지 않는 머리 나쁜 큰딸, 나는 딱 그만큼의 효심을 지니고 살아간다.


이렇게 아버지 책에 대고 추천사를 썼을 때,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책보다 내 글이 더 좋다고 하셨다. '내 추천사 덕에 아버지 책이 더 산다'라고도 하셨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아버지와 나)끼리 경쟁심이 붙을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쿨하게' 인정하셨다. 나도 물론 내 글이 더 잘났다고 '쿨하게' 인정하였다. (여기서도 불효녀의 심성이 한 번 더 드러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머니의 내밀한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어머니는 간혹 '소크라테스의 아내'처럼 악처 아닌 악처로 묘사되기도 하였으며, 하지도 않은 말을 발설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시간, 그 65만 시간의 온도'라는 긴 이야기를 쓰며 아버지의 시간을 들추는 일뿐 아니라 어머니의 누명을 벗겨 드리는 사명도 맡았다.



마음껏 비틀고 비꼬고 뒤집어라

 


 내가 처음, ‘아버지의 책으로 글로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마음대로 해라.’라고 하셨다. 그것이 아버지의 글이 되었든, 아버지의 생(生)이 되었든 마음대로 요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주 마음껏 아버지의 글에 내 글을 덧입힐 작정이며, 아버지의 민낯도 낱낱이 고발하고, 아버지 안의 일상도 세세히 파헤칠 예정이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 시작하는 내 이 이야기는 내 아버지 ‘김원작 씨’에 관한 글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글에 딸이 딴죽을 거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큰딸내미의 ‘딴죽 서평’에 조금은 놀라실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지만…….’ 나에게 민원을 제기해 오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민원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딸이라는 이유,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저 한번쯤은 눈감아 주십사 아버지 옆에서 치대고 뭉갤 예정이다.      



 65만 시간. 일흔 해가 훌쩍 넘는 시간.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 이제 65만 시간 넘게 데워 온 뜨끈뜨끈한 아버지의 시간을 곧 시작한다. 아버지의 글이 부디 딸의 딴죽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아슬아슬 멋진, 그 생의 곡예를 쭉 이어갈 수 있기를 아주 간절히, 그리고 진득하게 기대해 본다.

     

65만 시간의 이 열차,  곧 뜨거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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