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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12. 2020

태어나고 죽는 대신 사고 팔린다

이사일지_10일 차

너를 밟고 올라서다 (brunch.co.kr)








태어나고 죽는 대신 너는 사고 팔린다_이사일지 10          



너는 지금 분주히 더럽혀진다아무렇지 않게 나 역시 너를 더럽히고 있다너는 조금씩 너를 잃는다우리가 먹고 자고 쉬고 눕던 그 17년이 조금씩 밟힌다.     



“난 너무 많이 사고 팔렸죠. 강해지고 더럽혀졌죠.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김여명 님의 ‘피터팬’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심장이 너덜너덜해진 적이 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시퍼런 공감의 물방울이 두 눈에서 흘렀던 순간들이 있었다. 온탕 냉탕을 급격히 갈아탄 탓인지 심장은 온도 차를 버티지 못하고 종종 너덜너덜해졌다. 이 노래를 들으며 ‘직업’이란 세계에 있어서만큼은 어디 한 곳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터팬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피터팬으로 쭉 살아갈 수도 없는 나의 처지, 그리고 나의 주름도 떠올렸다.


      

그런데 요즘은 이 노래를 들으면 난데없이 601호, 네가 떠오른다. 무수한 ‘너들’을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 들어오고 나가고 누군가가 너를 사고 너를 팔고 너에게 새 옷을 입히고……. 새시까지 싹 다 뜯으면 좀 더 단단하고 강해진 ‘너’가 될 터이지만 사고 팔리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너를 밟고 지나가는 동안, 너는 결국 뜯기고 더럽혀지리라. 그리고 곧 다시 순백의 도배지로 되돌아가야 하리라.

     

조금 전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 같은 것, 기억 같은 것은 하나의 집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도배나 장판이 바뀐다고 그 흔적이 다 지워질 수 있겠냐마는, 같은 너에게서 다른 삶들이 생성되고 생장하고 소멸한다. 그 삶들은 가벼울까, 무거울까.      



나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삶을 601호에서 살았다. 임용고사에 떨어지기만 했고, 사실 나의 이십 대는 좀 초췌하고 초라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우리 식구 모두 탈 없이 살았다. (장트러블메이커인 나는 배탈은 많이 났어도 그곳에서 인생의 탈은 안 났다. 무사히 17년을 살았다.)


내 삶은 그곳에서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균형을 이루었다. 삶의 균형은 감사한 일이다.      



“넌 좋겠다. 전세계약서 쓰는 것에 관해 잘 모르니까. 몰라도 된다는 소리잖아, 그거.”     


그런데 누군가에겐 삶의 무게도 집의 무게도 무겁다. 나의 무지가 내 인생의 ‘평탄함’과 묘하게 연결되는 소리를 친구에게서 듣는다. 친구는 ‘직업의 세계’에서는 유목민이자 프롤레타리아에 가까운 나를, 갑자기 부르주아로 만든다. 그래, 친구의 말도 맞다. ‘집의 세계’에서만큼은 내가 유목민이었던 때가 적다. (내 집이 아니고 부모의 집이지만.) 


이사를 했던 횟수도 적고 이사의 기억이 안 날 정도이다. 집의 무게로 힘들어 본 적이 없으면서 예전 집에 대고 이런 감상적 ‘이사 일지’를 쓰는 것은 어쩌면 동물(특히 개나 소가)들까지 웃을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독립을 꿈꿀 만한 여력이 안 된다는 소리’와 ‘전세계약서를 쓰지 않고 살아온 소리’가 동의어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전셋집에는 조금밖에 안 살아본 운명이었건, 601호에 오래 살 수 있었던 운명이었건,   

   

인간의 운명처럼 어쨌든 사고팔려야 하는 집의 운명. 그 601호의 운명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안에 놓인 집의 무게가 어쩐지 조금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그래, 601호 넌 너무 많이 사고 팔렸다.     


앞으로도 넌 ‘너무 많이’ 사고 팔릴 테지. 어느 날엔가는 재건축이 될지도 모르고. 


아, 참. 601호에 새로 들어온 주인이 부동산에서 ‘2년 거주하고 나서 팔면’과 같은 소리를 하더라. 잘못하다가는, 너, 2년 뒤 또 뜯기고 밟히며 또 다른 새 주인에게로 팔릴지도 모른다.



그게 너의 운명이란 것일까. 아주 오래고 601호에서 너와 운명을, (‘운명’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다시 말하지.) 아주 오래고 601호에서 늦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고 또 점심을 먹고 또 화장실을 가고 가끔 방 안에서 낮잠을 자고 다시 저녁이 되어 밥을 먹고, 묵주기도를 하고, 밤이 되면 출출하다는 이유나 ‘불금’이라는 명목을 갖다 붙이며 부모님과 맥주 한잔을 하고…….     


그렇게 너와 운명이든 평범함이든 늘 너와 많은 것을 함께하고 싶었던, 스물넷에서 마흔 너머의 나를, 너도 가끔은 기억하겠지. 너도 나를 기억할 날이 있겠지.



지금 너의 새 주인이 너를 다시 팔면, 그때쯤 한 번 더 전전 주인이었던 우리를, 


어쩌다 한 번은 너도 떠올릴 수 있겠지.     





(표지 출처: unsplash@Cindy 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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