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말이라고 하나?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세상이야. 자꾸 이렇게 찾아오지만 말고 뭔가 대책을 내어놓으란 말일세!”
“저,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아니 내년에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될까요?”
“…….”
사람들은 ‘나이’만 보면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들이 호통을 치는 통에 ‘나이’라는 녀석이 주눅 든 표정을 짓는다. 계속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우리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다. 이러다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다. 그럴수록 우리는 ‘나이’ 요 녀석이 괘씸하다. 앞에서는 미안한 척 용서를 빌다가도 시간이 좀 흐르고 나면 우리 옆에 찰싹 들러붙어 그럭저럭 뭉개며 살아간다. 안면 몰수하고 인간들 옆에서 차곡차곡 자기 시간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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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때 통장 하나를 집어 든다. 매년 1월 1일, 입금자명에는 ‘나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잊지도 않고 매해 찾아와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내게 딱 한 살씩을 얹어 준다. 눈가의 주름, 늘어지는 뱃살, 늘어가는 흰머리 등은 ‘이자’라는 덤으로 차분히 쌓여 간다. 매년 나에게도 새로운 나이가 입금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방심하다 그만 가래로 막는 기분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들 통장 하나씩을 제 손에 들고 있다. 필러나 보톡스 같은 ‘가래’나 ‘호미’, 심지어 ‘돈’을 들여 만든 철갑 방패 같은 성형수술, 이런 것들을 지닌 자들도 모두 다 똑같이 ‘나이’라는 녀석의 방문을 어김없이 받아야 한다. 다들 난감하긴 마찬가지일 터다. 세상에 둘도 없이 공평한 이 녀석, 누구에게나 찾아가는 요 녀석, 자꾸 보니 미워할 수도 없는 녀석, 오늘도 하루 더 늙은 모습의 나를 선물하는 ‘나이’라는 녀석.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이 녀석, 나의 아버지에게도 은근슬쩍 오래고 들러붙어 있다. 아니, 이제는 아주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아버지 안에 푹 쑤셔 박혔다.
칠십, 입금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달랐다. ‘나이’ 녀석을 대놓고 구박하려는 나와 달리 ‘왔느냐’라는 담담한 말투로 그 녀석에게 방석까지 내어 주며 앉을자리를 마련해 준다.
“어서 오시게. 또 오셨구먼. 그래, 자네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오랜만입니다. 아픈 데 없이 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뭐, 이리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나야 고맙지. 허허.”
녀석은 아버지에게 오랫동안 민폐를 끼치는 중이다. 사랑도 투정도 받아 주는 사람에게나 하는 법이다. 녀석과 아버지는 오래 붙어 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생각지도 않은 작당을 펼치거나 거래를 하기도 한다.
“어떻게 그럼, 자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찾아올 심산인가? 너무 길게는 찾아오지 말게.”
“제가 찾아오는 게 싫은갑소? 그럼 나 얼른 짐 싸서 가 버릴라우.”
“아니, 아니, 그게 말이야……. 본심은 아니네. 사실 자네가 이렇게 와 주니 외롭지도 않고 퍽 좋구먼. 그래, 되도록 잊지 않고 계속 찾아와 주게.”
“그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찾아올까요?”
“자네가 오고 싶은 만큼 오소. 그것도 다 하늘의 뜻이겠지.”
삼인삼색(三人三色)
나이 먹은 게 흉은 아닙니다.
삼인삼색은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매월 한두 차례 만나는 세 사람의 만남이, 앞으로도 십 년은 더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고혈압으로, 한 사람은 당뇨로, 또 한 사람은 퇴행성무릎관절로……. 모두 노인병입니다.칠십 줄에 들어선 노인들이, 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습니다.
십 년을 더 살든, 못 살든……. 세 사람 중, 누가 먼저 떠날 것인가……. 먼저 떠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맨 나중에 혼자 남은 사람이 가장 쓸쓸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팔십까지 살아야 할 어떤 명분이라도 있는가.
-명분은 무슨 명분, 그냥…….
후회하는 일만 더 많아질 텐데…….
마지막 후회는 어떤 것일까…….
팔십 전에 죽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인명은 재천(在天)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보이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죽음을 붙들고 연연할 나이도 지났습니다.
그 노인네들, 망령이 들었어요.
<아버지의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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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아버지의 독립출판물 《그 여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에서
이제 아버지는 칠십을 훌쩍 지나치셨다. 팔십 전에 죽는 것이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리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 현명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인명을 재천에만 맡기지 않고 자신이 먹을 마지막 나이를 가늠해 보겠다고 시를 쓰던 아버지였다. 이제 그 아버지는 팔십을 향해 자신의 생을 이끌고 계신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호언하셨지만 아버지도 아버지의 자식들도 이를 믿지 않는다.
인생에는 3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가씨가 시집을 안 간다’이고, 또 하나는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 그리고 나머지는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라고 한다. 우리 집에는 거짓말쟁이가 둘이나 살고 있다. ‘시집을 안 간다’는 마흔 넘은 딸내미와 ‘늙으면 언젠가는 다 죽는 것이다’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일흔 넘은 아버지.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말을 보태 가며 한 지붕 아래서 오순도순 살아간다.
새해가 오면 또다시 통장에는 ‘더하기 1’을 한 나이가 입금된다. 아버지의 달력도 몇 개월 후면 곧 1월로 넘어간다. 그때는 이 딸내미도 똑같이 새로운 나이를 맞을 것이다. 이 세상 제일 성실한 녀석, ‘나이.’ 우리 부녀는 오늘도 정중히 그분, 아니 그 녀석을 받아들인다. ‘칠십’이라는 페이지가 넘어가고 칠십오, 칠십육, 칠십칠 쪽도 이제 다 넘어갔다. 나이라는 날강도가 내년을 기약하며 아주 조금 남은 올해의 우리 젊음을 앗아간다. 아버지는 그 녀석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본다.
"잘 가게. 곧 다시 보세."
"네.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나이’라는 녀석이 힐끔 뒤를 쳐다보며 아버지에게 내년을 기약한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한 해 더 늙어 간다.